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제목에서 <오즈의 마법사>가 연상된다.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로 본 것과 너무 많이 인용되었기에 친숙하다. 읽지 않고 기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책은 뒤로 재껴두고 닥터 팽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지금 닥터 팽을 말하는 것은 제목에 나오는 닥터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마법사 대신 닥터를 넣으면 이 소설의 제목이 된다. 그렇다고 <오즈의 마법사>와 비슷한 전개를 보여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비슷한 제목과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시공간을 다룬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닥터 팽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너무 괴이하고 특이하다. 첫 출연부터 남다르다. 전철에서 옥수수를 팔고 다니니 말이다. 곧 그가 화자의 의사로 등장하여 과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가족들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먼저 엄마가 춤바람이 나고, 다음 기억에선 누나도 역시 춤바람이 난다. 아버지는 이들을 쫓아다니고, 어린 그는 이 상황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첫 이야기와 다음 이야기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단순히 기억의 착오 때문일까? 그것은 아니다. 점점 많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가 만들어낸 가족사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가 환각 속에서 만들어낸 기억을 설명한다면 수연은 현실에서 겪는 일을 말한다. 그를 좋아하고, 미행하고, 주변을 맴돈다. 처음엔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게 된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그와 반대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현실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의 환각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다르게 현실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것은 다시 그가 환각에서 현실로 조금씩 이행하는 것과 평행선을 이루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환상 속으로 도피하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을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화자가 닥터 팽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속에 그의 기억은 조금씩 왜곡되고, 현실은 점점 과거의 사실을 드러낸다. 화자의 기억 속 닥터 팽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첫 등장에서 지하철 잡상인이었다면 그 다음엔 의사로, 간호사로 수없이 변화하고 곳곳에 나타난다. 이것은 약에 찌든 그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지만 그가 버리고자 하는 과거의 흔적일 수도 있다. 망상의 존재가 살그머니 현실의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덕분에 앞부분에서 현실과 환각이 뒤섞이고, 허구가 사실처럼 보이고,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진다.

작가는 닥터 팽의 입을 통해서 현실과 망상에 대해서 말한다.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172쪽)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 있다. 그가 왜 그런 환상을 만들어내고, 과거를 잊고자 하는지 말이다. 그 현실이 드러나면서 수연의 현실이 겹쳐지고, 그가 버린 진실이 뭔지 알 수 있다. 이 과정이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왠지 깔끔한 느낌이 약하다. 엽기적이고 괴이한 장면들이 나와서 그런가? 그녀의 책을 계속 읽겠지만 아직 완전히 나의 취향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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