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디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2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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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말해야 할까? 고스트 라디오와 관련된 도시괴담? 아니면 현실과 환상의 교차가 만들어낸 유령 이야기? 분명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읽으면서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수많은 청취자가 들려주는 괴담은 초현실의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간이 뒤섞이고,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누가 꿈꾸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상당히 복잡하게 꼬여 있다. 하지만 빠르게 읽히면서 그 이상하고 괴이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라디오. 참 매력적인 물건이다. 단순히 기계만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파를 타는 순간 그 매력은 빛을 발한다. 수많은 텔레비전 채널이 생기고, DMB로 동영상을 볼 수 있지만 라디오의 생명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다. 라디오 디제이의 말 한마디와 그가 틀어주는 노래 한 곡에 기쁨을 즐거움을 슬픔을 우린 경험한다. 대부분의 라디오는 이런 감정을 발산하고 공감한다. 그런데 만약 공포를 공유하기 위한 채널이 있다면 어떨까? 고스트 라디오는 각자가 경험한 무섭고 초현실적 현상을 말하고 이것을 즐기는 채널이다.

소설 속 화자 호아킨은 어릴 때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또한 그 차를 타고 있었다. 다행히 살아남았다. 그 당시 그들과 부딪힌 차에 가브리엘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 역시 죽었다. 서로가 원망하고 증오해야 할 사이인데 어느 순간 둘은 친구가 된다. 둘 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고, 실험적인 음악을 하면서 마니아를 거느린다. 이 둘의 조합은 불법으로 침입한 건물에서 발생한 감전사고로 깨어진다. 바로 가브리엘이 죽은 것이다. 이후 호아킨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라디오 디제이가 되고, 우연히 읽은 포의 단편 덕분에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한 고스트 라디오 프로그램이 큰 성공을 거둔다. 이제 그는 멕시코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미국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청취자의 사연에 자신의 감정이 이입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처음 책을 읽으면 빠르게 나아가는 진도와 더불어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문화나 종교적 문화적 편재 속에 진행되는데 난감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 호아킨을 둘러싼 환경이 미묘하게 뒤틀리고, 유령이 존재가 조금씩 실체를 가진다. 거기에 청취자의 사연들은 어둠 속에서 불안을 조성하기 충분하다. 단순한 도시괴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호아킨의 감정이입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였고, 그 이미지들이 하나의 사연으로 이어진 것 같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자리를 바꾸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살짝 무너진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헷갈리는 순간 뒤틀림은 더 심해지고, 과거의 기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면서 드러난다. 작가는 이 작업을 급하게 진행하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면서 나아간다. ‘그것’의 정체가 점점 모호해지고 마지막엔 거대한 반전으로 앞에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전복시킨다. 당혹스럽고 혼란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지닌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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