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잠에서 깬다. 그가 먼저 생각하는 것은 ‘지금’이란 시간과 ‘여기’란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왜 이런 머리 아픈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날까? 바로 여기서 소설은 시작되고, 이 인식이 왜 일어났는지 주인공 조지의 하루를 통해서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오는 하루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하루가 전 생애를 요약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도 한다.

조지는 58세의 대학교수다. 동성애자다. 그의 젊은 애인 짐은 한 여자와 여행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런 과거의 사실과 점점 늙어가는 그의 육체를 생각할 때 늘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가 결코 상쾌하고 즐겁지는 않다. 반복되는 일상의 흐름은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것과 상관없이 계속 이어진다. 상실감은 한없이 커지지만 아직 일상 속에서 그 공백이 메워질 정도는 아니다. 작가는 한 늙은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그 상실감과 함께 일상 속에서 다시 다가오는 유혹과 현실에 대한 비판을 조용히 담아낸다.

이 소설이 처음 나온 것이 1964년이다.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1962년이다. 여기엔 냉전 시기의 두려움과 공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가 깔려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쿠바 미사일 사태다. 이것은 책 중간에 미사일 반대란 구호로 잠시 드러난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십 수 년에 불과한 현실과 원자폭탄의 존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상당히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장점이자 단점인 다수결에 의한 문제와 소수집단에 대한 배척을 살짝 언급하거나 중심에 놓아둔다. 

책을 읽으면서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사실보다 작가의 거침없는 문장과 사실적인 감정 표현에 놀란다. 노골적인 표현은 그 시대를 생각하면 더욱 놀랍다. 이성애자인 남자가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남자들에게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서 성에 대한 선호도는 달라도 욕망은 진솔함을 느낀다. 또 그가 강의할 때 그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동양여자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나 동양인이나 흑인 등의 소수집단에 대한 그의 반응과 인식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하루는 긴 시간인 동시에 아주 짧은 시간이다. 일어나고 씻고 운동하고 강의하고 식사하고 친구를 만나 술 마시고 제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토론할 정도로 긴 시간이지만 긴 삶의 순간에선 그냥 하루일 뿐이다. 이 하루가 조지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그 순간들이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되거나 큰 변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이 하루가 현재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상실과 회복과 반복을 통해 그의 현재를 보여준다. 정체된 듯하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삶 말이다. 상실과 외로움이 점점 짙어지는 현실에서 깨어남과 잠듦이란 두 행위를 통해 탄생과 죽음의 두 순간을 표현하고, 하루란 시간을 통해 인생이란 시간의 의미를 말한다. 너무 과장된 해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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