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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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린 시절 어린이 축약본으로 나온 책을 읽었다. 읽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점점 자라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갔고, 읽었다는 기억 때문에 원전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쥘 베른 전집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한두 권 사고, 다시 읽게 되었다. 몇몇 부분에선 황당했지만 박물학적 지식은 대단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최근 SF소설이나 모험소설에 적응한 나에게 조금은 강한 인상을 주는데 부족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나의 부정확한 기억이다. 화자인 박물학 박사 아로낙스가 어떻게 네모 선장을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틀린 기억들이 가득하다. 이 기억들 덕분에 물론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읽기 전에는 전혀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두 동반자를 만나서 반가웠다. 한 명은 하인 콩세유고, 다른 한 명은 작살잡이 네드다. 이 둘은 한정된 공간과 바다를 탐험하는 속에서 박사에게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고, 웃음을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노틸러스 호에 그들이 타게 된 것은 이 잠수함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 때문이다. 떠다니는 암초니 거대한 고래니 괴물이니 하는 소문 등으로 그 정확한 정체가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잠수함이란 것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잠수정 같이 조그마한 것은 있었다. 하지만 대양을 운행하는 기선에 구멍을 낼 정도의 거대한 잠수함은 없었다. 그러니 현재처럼 정확한 측정 도구나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잘못 알게 된 것도 당연하다. 이 잘못된 정보와 우연이 겹치면서 박사 등이 노틸러스 호에 탑승하게 된다.

박물학자에게 현장에서 직접 연구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아로낙스 박사가 노틸러스 호에 타고 바다 속을 탐험하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연구 등은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유익한 일이다. 나 같이 무식한 인간이 바다 속을 열심히 들여다봐야 물고기와 오징어 와 조개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화자가 박물학 박사 아닌가! 그는 놀랍고 신난 모험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생물체들을 우리에게 하나하나 소개해준다. 이런 박물학적 지식은 읽는 내내 놀라움과 새로움을 준다. 

풍부한 박물학적 지식과 많은 삽화들은 원전이 지닌 가치를 더 높여준다. 수많은 생명체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눈앞에 보이는 것 같고, 책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삽화는 실제로 눈앞에 그것을 보여준다. 내가 알고 있던 바다 속 풍경과 과학적 지식이 얕아 그 엄청난 정보들을 제대로 판별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어디가 정확한 정보고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한 과학 지식과 더불어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노틸러스 호에 탄 선원들이다. 네모 선장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박사 일행과 대화를 나누거나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개월이 넘는 시간과 그들이 지구의 바다 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것을 생각하면 의외다. 물론 이들이 함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박사 무리와 선원들 사이는 알 수 없는 벽으로 갈라져 있는 것 같다. 인간적인 접촉이 거의 없다는 사실 속에서도 바다 속 풍경의 신비함과 놀라운 정보들이 주는 재미가 강하다. 이것이 단순히 이야기의 속도와 박물학적 지식과 상상력의 산물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소설에 영향을 받은 나의 착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19세기 소설이다 보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놀라운 것은 시대를 앞선 상상력의 산물들이다. 잠수함부터 시작하여 기발하고 놀라운 상상력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어떤 부분에선 이 책을 읽었던 것 때문에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한 것이 그대로 나타난 것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하나는 쥘 베른의 독실한 마니아가 혹시 잠수함을 타고 노틸러스 호의 경로를 따라간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실과 소설의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은 네모 선장의 비밀이 궁금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작가의 다른 책 <신비의 섬>에서 밝혀진다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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