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과 옌
판위 지음, 이정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한 소녀와 한 여인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뛰어난 실력으로 월반을 하여 일찍 대학에 입학한 소녀 밍에게 우연히 다가온 여인 밍의 만남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단순하게 두 여자의 사랑과 우정으로 읽을 수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현실과 시대의 풍경은 그 단순함을 뛰어넘었다.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진 밍의 감정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이 잘 나타나 있다.  

 

 밍의 회상으로 시작하여 그리움으로 마무리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런 부분은 나의 감성과 남자라는 이유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그 시대와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점이 더 크지 않나 생각한다. 예전 읽었던 중국 소설에서 본 중국의 풍경이 이 소설에선 잘 나타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쓴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이 다루어진 시기가 90년대임을 생각하면 이제 막 변화의 물결이 중국을 뒤덮으려 시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밍의 시점으로 이야기한다. 회상이란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월반을 할 정도로 똑똑하지만 아직 여인으로 성숙하지 못한 밍에게 마오 옌의 등장은 충격이다. 아름다운 옌과 그녀를 둘러싼 사건과 소문은 시골에서 공부만 한 밍에게 때로는 역겹고 어리둥절하고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옌과 친해지고 그녀의 삶 속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그 혼란은 더 복잡해지고, 그녀에 대한 밍의 감정은 더욱 성숙해진다.   

 

 밍과 옌의 만남을 보면 야릇한 분위기를 많이 풍긴다. 동성애의 기운을 살짝 깔아두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과 우정은 이런 것이 아니다. 소수민족 묘족인 옌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떠나 당시 광동성 최고 도시인 선전에 안착하려는 욕망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그녀뿐만 아니라 대학생 모두가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다. 책 후반에 이 도시에 거주하기 위해 남자를 찬 여장와 이런 그녀를 찌른 남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열망과 감정의 깊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장면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던 두 여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감정과 동경을 드러내준다.  

 

 밍과 옌이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면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다른 재미를 준다. 여자 기숙사로 찾아와 방송으로 방문을 알리는 모습이나 숲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나 성에 대한 무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에선 불과 십수년 전 중국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빠르게 바뀌었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뒷부분에 동성애자를 보는 시각이 바뀐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예감했던 하나가 사실로 밝혀져 살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밍에게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사된 것인지 궁금했다. 어느 정도 그녀의 경험이 다루어 있는지와 그녀가 읽은 책들의 목록과 재미가 있었다는 부분에선 부럽기도 했다. 나 자신이 읽으면서 간혹 재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과거 나의 성장을 되짚어본다. 그 시절은 분명 지금과 달랐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부모 세대로 동일하게 겪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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