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베트남 태생의 작가라면 먼저 떠오르는 베트남 문제가 이 소설에선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일곱 편이 실린 이 소설집에서 두 편이 베트남과 관련이 있기는 하다. 특히 표제작인 <보트>는 한때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왔던 베트남 난민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다른 지역과 다른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가 태어난 곳보다 자란 곳과 환경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닌가, 유추해본다.  

 

 첫 단편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은 제목 속에 많은 것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를 작가와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그의 내밀한 고백일 수도 있다. 몇 편의 단편을 내놓았고, 이제 새로운 단편을 구상하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아버지와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이 단편을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것 중 하나가 이 단편이 단편집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란 것이다. 아버지와 그의 관계, 베트남 출신이지만 베트남을 소재로 글을 쓰지 않는 것이나 이야기 마지막에 아버지의 경험을 소설로 만든 것 등이 왠지 이 단편집 구성과 맞물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경험은 그 전쟁이 얼마나 추악하고 끔찍하고 비윤리적이었는지 잘 드러내준다. 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 십대 암살자 후앙 파블로 메렌데즈 이야기다. 다른 글 속에서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삶이 얼마나 위태하고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지 보면서 삶이 지닌 새로운 힘과 공포를 배운다. <일리스 만나기>는 제목 그대로 일리스를 만나기 위한 한 노화가의 이야기다. 바람을 피운 후 딸을 데리고 떠난 아내와 그녀를 마녀라고 부르면서 헤어진 딸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는 그의 현실과 미래를 함축적으로 담아내었다.  

 <해프리드>는 존재감 없던 제이미가 준결승전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으면서 학교의 화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가 바라보기만 하던 존재였던 앨리슨이 관심을 보이고, 그녀와 연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어머니는 암으로 고생을 하고, 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나가려고 한다. 동생은 자신을 맴돌며 관찰하는 현실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충돌은 나와 가족을 돌아보게 만든다. 글 속에 숨겨져 있는 그의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와 여운을 남긴다. <히로시마>는 2차 대전 막바지에 달한 일본의 풍경을 한 소녀의 독백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거짓과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한 소녀의 독백은 그 결과를 알고 있기에 아련한 고통과 그 시대의 비극을 들여다보게 한다.  

 <테헤란의 전화>는 이란이 배경이다. 미국 여성 사라를 통해 테헤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그녀의 내면도 산산이 조각난 상태임을 이 도시와 대비해 그려내고 있다. 여성 잔혹사를 읽으면서 파빈의 행적이 궁금하고, 호텔에 남은 두 남녀 앞에 벌어질 일들이 황량하다. 표제작 <보트>는 베트남 난민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난민들의 선상 생활은 끔찍하다. 육지를 향해, 자유를 향해 달아난 그들의 욕망 앞에 더 넓은 바다는 공포이자 절망의 대상이다. 배에서 죽은 사람을 바다에 던지고, 시체를 밑밥 삼아 상어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생존의 의지와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의 공포가 생생하게 다가온다.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는 문장이 문득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역시 짧은 문장들이다. 헤밍웨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문장 속에 감정은 직접 드러내길 보다 행간에 조용히 숨어있다. 차분히 읽다보면 그 감정들이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쌓여간다. 그리고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란 존재다. 첫 단편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이 단편집에서 그리움과 추억의 대상이다. 감동적이고 놀랍도록 창의적이란 광고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