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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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다. 유전적인 문제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시간대로 여행을 하는 헨리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사랑했던 클레어의 사랑을 다룬다. 이 둘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리움과 사랑을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잊게 된다. 한 편의 로맨스 소설이자 sf소설이다. 시간을 여행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하여 정말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함께 한 시간이 이렇게 뒤섞여 있으면서 강렬하게 연결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서로를 만난 나이가 각각 다르다. 헨리가 클레어를 처음 만난 것이 스물여덟이라면 클레어가 헨리를 처음 만났을 때 여섯 살이었다. 이 둘의 나이 차이가 여덟 살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맞다. 이 둘은 산술적으로 계산되는 나이를 초월하여 각각 처음 만나게 된다. 이렇게 이상한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원인이 바로 헨리가 가진 병이자 능력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시간대로 여행하는 것이다. 멋져 보이지 않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시간 여행을 꿈꾼다. 과거로 미래로 마음껏 여행을 하면서 현재 느끼는 아쉬움을 되돌아보고, 지금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경이로움을 바란다. 하지만 헨리의 시간 여행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단 하나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단 하나의 행복이 바로 스물여덟 이후 그와 함께한 클레어를 시간여행 속에서 만난 것이다. 부수적으로 미래에서 온 그가 과거의 그에게 경제정보를 줘서 어느 정도 부유함을 가지게 하는 정도다. 결코 그들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헨리의 시간여행은 자신이 바라는 시간으로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시간여행을 떠난다. 헐벗은 채로 언제인지도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나타난다. 언제 다시 그가 돌아온 시간대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살기 위해 나쁜 짓을 익히고 연습하고 실천으로 옮긴다. 몰래 문을 따고 들어가 옷이나 돈을 훔치고, 소매치기로 다른 사람의 지갑을 슬쩍 빼낸다. 벌거벗은 상태로 나타나다 보니 가끔은 폭력으로 상대편 옷을 빼앗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처음 클레어가 헨리를 만났을 때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현실의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주 나타나면서 그녀에게 하나의 우상처럼 되었다. 몰래 숨겨둔 비밀연인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자신보다 한참 나이 많은 그의 모습은 어쩌면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우쭐함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미래에서 온 어른이 그녀의 단 한 명의 사랑이 될 것이라곤 그녀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를 찾아온 다양한 나이 대의 헨리가 그녀에게 계속적인 신선함과 즐거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는 순간 그에 대한 환상과 기대와 그리움은 이 세상 무엇보다 강렬한 사랑의 감정으로 변한다.  

 

 얄팍한 물리학 지식은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기존에 보았던 시간여행에 대한 모든 공식이 깨어진다. 미래의 헨리가 과거의 헨리를 만나서 정보와 생존 기술을 가르쳐주고, 과거의 헨리가 미래의 헨리나 클레어를 만나서 자신의 앞날을 알게 된다.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다른 시간대의 두 헨리가 공존하고, 미래가 과거로 와서 미래의 결정할 수 있는 조그마한 변화를 일으킨다. 다양한 차원의 세계가 공존한다면 무리가 없지만 이 소설은 하나의 시간대만 존재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물리학은 멀리하고 단순히 두 남여의 만남과 헤어짐만을 생각한다면 독특하고 기발하면서 황홀하면서도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누가 더 행복했을까 생각해본다. 여섯 살부터 헨리를 그리워하고, 단 한 명과 사랑을 나눈 클레어일까? 아니면 다양한 여자들을 만나고 경험한 끝에 스물여덟에 클레어를 만난 헨리일까? 개인적으로 클레어가 더 행복했을 것 같다. 헨리의 과거가 주는 아픔이나 자신도 모르게 하는 시간여행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다양한 경험과 많은 여자란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록 클레어가 헨리의 갑작스러운 시간여행에 불안을 느끼고, 다시 나타남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하여도 말이다.  

 

 두 남여가 만나는 나이와 시간은 정말 다양하다. 재미난 것은 클레어의 시간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헨리의 나이만 자꾸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연출로 보인다. 미래의 헨리가 현재에 나타나서 채워주는 시간과 감정들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만으로 이렇게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니 대단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준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2권 354쪽)란 문장에 함축된 감정의 깊이와 울림이 강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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