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와 나 - 어느 천재 예술가의 세기의 스캔들
스탠 로리센스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현대 미술계가 어떤지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달리라는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스타를 통해 미술계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선 과장되고 냉소적이면서 비틀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실제 달리의 그림을 판매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이제 그림은 하나의 산업이자 투자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감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 중개상들이나 전문가들의 입김에 의해 그 가치가 휘둘리는 것 같다. 사실 그림 한 점에 수 억 달러라니 이해가 되는가?   

 

 작가는 벨기에 치즈 공장에서 일하며 시를 쓰고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한 잡지사에 할리우드 기자로 스카우트된다. 처음엔 할리우드에 갈 희망에 부풀러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기사를 쓴 곳은 회사의 골방이다. 기존에 나온 잡지들에서 발췌해 엉터리 기사를 쓴 것이다. 이런 그에게 기회가 온다. MMC라는 은행에서 달리 전문가로 그를 다시 스카우트 한 것이다. 바로 그가 엉터리로 쓴 기사를 보고 말이다.   

 

 사실 그가 스카우트될 당시 달리가 어느 정도 인기 있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는 현실은 너무나도 황당하다. 달리라는 이름으로 그림이나 프린트가 엄청난 액수에 팔린다. 그의 사인이 무려 679개나 되고, 이 사인이 있다면 하나의 보증수표처럼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잠시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투기를 이용한 화자의 활약이다. 어떻게 보면 그냥 입 발린 소리 같은데 세금을 피하고 쌓여가는 돈을 처분하고 싶은 부자들에겐 복음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세계를 돌면서 달리의 작품을 사고파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나 팔 때마다 수수료로 거액을 챙기니 말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맥달리, 아비다 달러, 세뇨르 달리다. 1부가 맥달리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것은 맥도날드에 비유해서 달리가 대량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2부인 아비다 달러는 달리의 이름과 성을 애너그램으로 표현한 것인데 ‘달러 미치광이’란 뜻이다. 여기선 달리에 대한 관계자들의 회상이 곁들여지면서 세계에 떠돌고 있는 달리 작품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에선 제목대로 달리의 최후가 나오고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추스르는지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스탠의 활약에 놀라고, 그 거래 금액에 흥분하고, 달리를 이용해 수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의 거짓된 모습에 분노했다. 특히 세계적인 경매업체들이 고액의 수수료를 챙기면서 가짜를 판매하는 모습에선 그들의 역할이 중개가 아닌 투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만든다. 만약 언론에 사실인 것처럼 소개되면 현찰을 싸들고 다니면서 구매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투기 그 자체다. 하기야 지금 우리들 주변도 투기의 광풍에 휩싸여 묻지마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달리라는 전 세계적 스타의 작품이고, 돈 세탁까지 된다면 누가 주저하겠는가!  

 

 달리의 작품이나 예술세계나 그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 소설은 잘못된 선택이다. 작가는 달리의 만년 모습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술 거래 세계의 거짓과 허상을 보여줄 뿐이다. 거대한 거품이 만들어지고, 그 거품을 실재하는 물건으로 인식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온다. 한 점의 그림을 감상의 대상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공모가 단순히 한두 사람만이 아닌 예술계 전체가 합세한 것임을 알게 디는 순간 그 거품은 터지고 만다.   

 

 달리를 잘 몰라도 재미있다. 그의 그림을 볼 때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과 사건들은 추악하다. 비록 이 소설에서 달리가 직접적으로 화자와 연결되어 사기행각을 펼치지는 않지만 그 중심에 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한 편의 소설로 모든 예술계를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점점 거대해지는 미술계를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이 그림 자체로 감상되기보다 그 거래금액으로 평가되는 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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