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번째로 읽었다. 처음 이 소설에 대한 극찬을 듣고 아주 열심히 헌책방을 뒤졌다. 늘 그렇듯이 절판된 책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겉은 낡았지만 안은 비교적 깨끗한 책을 구하게 되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힘들게 구한 책들에겐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좀 보내다 하루는 커피숍에 들고 나가 단숨에 읽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덕분인지 아니면 마지막 반전 때문인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두 번째 읽은 지금도 역시 마지막 반전은 놀랍지만 머릿속에선 이해가 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가가 사와자키의 입을 통해 모든 설명을 하지만 갑자기 돌출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이해력 부족이나 그 상황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도 있다. 사와자키와 함께 범인을 쫓으면서 느꼈던 분노와 자괴감과 노력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더 작가에게 당했다는 느낌에 대한 불만 때문일까? 어떻게 보면 둘 다 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사와자키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유괴당한 소녀의 집으로 오면서부터다. 그가 온 것은 사라진 가족 문제로 얘기하고 싶다는 의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집에서 부딪힌 사건은 유괴사건이다. 그는 공범으로 몰리고, 혐의가 풀릴 즈음에 유괴범이 그에게 돈 가방 전달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유괴범은 그를 감시하는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레스토랑을 전전하게 만든다. 결국 폭력배들과 싸우게 만들고, 그 싸움 끝에 쓰러지고 만다. 당연히 돈 가방은 사라지고 없다. 돈은 사라졌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의 유괴사건이라면 여기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탐정의 역할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소녀의 외삼촌을 등장시켜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의 아이들이 혹시 이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가족의 내밀한 비밀이 드러나고, 그것과 동시에 새로운 단서들이 튀어나온다. 이것만 본다면 경찰들이 참으로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조그마한 시차일 뿐이다. 서로가 인정하지 않던 두 부류가 이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감정을 숨기면서 협력한다. 그것이 비록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여도 말이다.  

 

 작가의 처녀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얼마 전에 읽은 때문인지 반갑고 처음에 읽을 때 느끼지 못한 재미를 많이 받았다. 나의 얄팍한 기억력 덕분에 책의 중요한 내용들이 기억나지 않아 어느 부분에선 새롭게 읽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옛 기억 중 일부가 새록새록 솟아났다. 처음 읽을 때보다 더 흥미롭게 읽었다면 거짓말로 치부하려나? 그때 몰랐던 사와자키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면서 그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와 상황들이 전작의 기억들과 맞물려가면서 낯선 재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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