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한 인간이 국가나 조직에 의해 이렇게 다루어져도 되는지 의문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붙여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나라에서 안보니 테러와의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펼치는 이 작전은 역겹고, 가슴 아프고, 분노를 자아낸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삶은 정의란 것 때문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다. 국가나 단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그 기본을 생각하게 된다. 읽는 내내 분노했고, 불편했다. 통쾌함보다 뒤끝이 더 강하게 남는다.  

 

어느 날 터키출신 헤비급 챔피언 뒤를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따라 다닌다. 남들 시선 받는 데 익숙한 그는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삼일 반복되다 보니 그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 존재가 바로 이 소설 중심에 놓인 인물 이사다. 처음 그의 등장과 이야기의 진행을 보면서 테러나 스파이의 활약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선입견이다. 작가는 이사를 중심에 놓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조직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 과정에 개인이나 조직 속의 개인이 어떻게 취급 받고, 이용되고, 잊혀지는지 알려준다.  

 

 소설의 구성은 상당히 복잡하다. 어떻게 보면 간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장은 예상을 벗어난 이야기 진행과 결말로 이어간다. 처음에 느낀 테러범과의 첩보전 같은 분위기가 이사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현대사의 비극으로 변한다. 이 변화는 다시 그를 만난 두 인물인 인권변호사인 아나벨과 더러운 돈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장인 브뤼의 것이 된다. 이 둘이 이사를 가볍게 둘러싼 인물이라면 독일 정보조직은 이들을 포위하고 감시하면서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사실 이 소설의 핵심은 이사가 아니다. 이사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그 유산을 둘러싼 이야기들과 테러와의 전쟁이다. 이사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부의 대령으로 엄청난 부정축재를 하였고, 이사의 어머니를 강간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에게 자신이 쌓아올린 부를 넘겨주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랑보다 그가 저지른 악행이 더 크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이사가 이 이익을 얻는 것을 거부한 것도 당연하다.   

 

 이사와 관련하여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는 아나벨이다. 그녀는 이전에 망명한 이슬람 신도 한 명을 국가 안보란 것 때문에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녀의 배경을 이용한다면 쉬울 것 같은 데 그녀는 이를 거부한다. 이사의 존재가 부담스럽지만 자신의 과오를 되돌릴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에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 이사가 바라는 바를 이루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가 상대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국가란 거대 조직이다. 더군다나 이사의 심신 상태마저 상당히 불안정하다.   

 

 브뤼의 은행은 러시아 등에서 넘어온 더러운 돈을 보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계인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말년에 벌인 사업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계좌를 찾는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직접은 아니다. 그 중계자가 아나벨이다. 집안이 콩가루로 변해가고, 자신의 삶도 결코 행복하지 않는 브뤼에게 이 사건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잊고 있던 행복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또한 국가란 조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나벨과 브뤼가 현실 속에서 개인의 한계와 노력을 보여준다면 바흐만은 조직 속에서 개인의 노력과 한계를 드러낸다. 처음엔 각자 아무 관계가 없다가 뒤로 가면서 연결되어지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이 관계가 한 인물의 아주 낮은 가능성에 눈길을 주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리고 5퍼센트의 악한 면을 부각시킨 장면에선 인간이란 존재와 조직이 지닌 속성 때문에 분노하게 된다. 왜 세계가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불행한 윤회에 들어가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우리의 현실과 똑같은 문장이 곳곳에 나온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서 그렇다. 1920년 영국이 아일랜드에, 1953년 영국이 이란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 것과 영국인이 “미래을 봐요!.”를 말하는 문단에선 한국 현대사의 재현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일은 어제의 창조물입니다.”란 문장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들이 원했던 한 인간의 존재에서 비롯한 이야기지만 그 속엔 인간성을 짓밟고 타락시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상황들이 분노를 자아내고, 가슴 아프고, 결코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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