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배명훈을 처음 만난 것은 3인 공동 창작집 <누군가를 만났어>에서다. 이 창작집을 보면서 한층 성숙한 한국 SF문학의 발전과 가능성에 흥분했다. 그 이후 이 작가들 이름이 나오면 눈길이 먼저 간다. 그들을 항상 단편으로만 만났는데 약간 기복은 있었다. 그렇지만 반갑고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배명훈 그만의 연작소설집이 나왔다니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설정을 보니 먼저 바벨탑이 연상되지만 잠시 그 속을 들여다보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자 확대경을 통해 그 치부를 드러낸 이야기다.   

 

 빈스토크란 거대 타워 도시를 배경으로 쓴 연작소설이다.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이야기부터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한다. 35년산 고급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여 권력 지도를 연구한다니 독특하면서 기발하다. 미세권력연구소란 이름도 낯선데 이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더욱 낯설다. 하지만 이 술병의 이동과 집결을 보면 권력의 속성이 살짝 드러난다. 물론 황당한 결과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다. 권위적인 연구소의 모습과 더불어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은 약간 돌출된 느낌이 있지만 재미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재미있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약간 비틀어 보여준다. 권력의 힘에 눌려 사회비판적인 글을 쓰지 못하고 자연예찬만 하는 작가나 빈스토크의 시민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를 방치하는 현실이나 고시에 합격한 한 남자의 회고를 통해 부패한 곳에서 청렴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시간을 넘어서 전해지는 감성과 한 명의 위해 전 세계가 협력하는 모습은 강한 여운과 함께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고 회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대립과 분열을 능청스럽게 비판하면서 블랙유머를 품어낸다.  

 

 광장에 나타난 코끼리 아미타불과 테러리스트를 등장시킨 두 이야기에선 광장 공포에 질린 위정자와 자신만 살려고 하고 잘못은 모두 남 탓만 하는 정치인을 드러내어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을 비웃고 있다. 편지 형식으로 실험한 <광장의 아미타불>은 형부와 처제의 시각차를 통해 인식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 작품에선 신념이나 테러보다 긴 세월을 함께 부디끼며 산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솔직한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에도 마지막 반전이 펼쳐지면서 여운을 남기고 생각하게 만든다.  

 

 빈스토크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를 하나의 건물로 압축한 것이 아닐까 였다. 좀더 좁게 본다면 강남지역이 이 타워에 더 적합할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정세나 사회의 풍토가 이 연작소설 속에선 다른 가면을 쓰고, 살짝 속내를 숨기면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 깊은 곳에 깔린 아픔과 울분과 안타까움과 어두움은 희석된 채로 다가온다. 그리고 부록 <520층 연구>는 지역 공동체가 깨어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보다 일방통행으로 다가오는 매스컴의 영향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하면서 중요한지 알려준다. 즐겁고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력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