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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평점 :
아지즈 네신의 어린 시절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바탕에 흐르는 감정은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과 사랑이다. 그가 처음 세상에 대해 눈 뜬 것이 자신의집이 불타는 순간부터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것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마치 하룻밤의 축제, 신나는 명절처럼 느껴졌다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과 기억들이 이후부터 꾸준히 나온다.
터키를 말할 때면 늘 이스탄불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책에선 이스탄불이 배경이 아니다. 카슴파샤란 곳인데 어딘지 잘 모르겠다. 아마 해군사령부에서 일한 하산 아저씨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바다 근처에 있는 모양이다. 그가 살던 시절이나 지역은 결코 부유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수준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네신의 동생이 잘 먹지 못해 구루병에 걸린 것이나 어머니가 결핵에 걸린 것부터 몇 년 지난 옷을 물려받는 등의 이야기까지 삶의 경제수준을 드러내어준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그의 삶은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그를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책속에 그를 풍자작가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그 무엇이 바로 그의 어린 시절 삶이다. 눈물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그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실고 있는데 어느 대목에선 옛날 한국의 풍경과도 묘하게 겹친다. 흔히 형제의 나라란 입 발린 소리를 하는데 가끔은 그런가! 하고 생각할 때도 많다. 결코 풍족하지 못하고, 부모님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길 바라고, 열심히 공부하길 원한다. 이런 삶의 모습이 지나간 우리의 부모님 세대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총 33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처음엔 각각 독립된 이야기인가 했는데 읽다보니 모두 연결되어 있다. 구루병에 걸린 동생부터 결핵으로 고생하는 어머니까지 그의 성장과 맞물려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삶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주린 배를 움쳐지며 다니고, 친구들과 싸우고, 그 싸움의 결과로 예상하지 못한 지위에 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싸움 이전까지 모습을 보면 어린시절 싸움을 정말 못했던 나의 과거가 살짝 생각난다.
많은 이야기 중에 다른 곳에서 본 문장이지만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때 그가 오랜 세월 동안 가난 때문에 부끄러웠다고 말한 것과 그것이 작가가 되기 전까지만 그랬다는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그의 깨달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모두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재산이 많은 게 더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신앙처럼 숭배하고 부르짖는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맞는 말이다. 네신은 이것을 다시 그 당시에 많이 말해지던 백만장자가 되려면 지켜야 할 철칙을 비판함으로서 얼마나 허구적인 표현인지 알려준다. 흔히 말하는 아메리카 드림이 단지 몇 퍼센트의 상류층을 위한 환상임을 지적하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그 시절의 가난과 불행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이 글을 쓴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또 이야기 속에서 말했지만 어린 시절 기억을 사실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무리다. 앞에서 기억과 이야기의 혼돈을 겪었다고 했는데 이미 나 자신도 경험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실에선 착오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곳곳에 품어져 나오는 풍자와 해학은 단숨에 이 책을 읽게 만든다. 비록 아픔과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고 하여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