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드라의 그물 Nobless Club 12
문형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인드라의 그물은 불가에서 세상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의 비유로 흔히 쓰인다. 이것은 관계이자 인과율의 세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깊이 들어가면 얕은 나의 지식이 탄로 나니 여기서 멈추자.   

 

 소설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인과 인간, 인간과 보살, 보살과 여래의 장이다. 각 장마다 하나의 단계가 나와 있고, 각 장의 끝에 이르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각 장의 제목을 그냥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앞에 화엄경을 인용한 내용과 맞닿아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책 뒷장에 요약되어 있다.  

 

 

 천인 교와 그녀의 화신인 여의는 인드라망을 통한 강림으로 신수에 목이 꾀 뚫린 아이를 만난다. 교는 파괴인법으로 신수를 죽이고, 아이를 치유인법으로 생명을 살려낸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이 아이가 교 등이 머무는 정각당으로 오는 도중에 젊은 남자로 자란 것이다. 이 남자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칼키다.   

 

 칼키는 갑자기 자랐지만 어느 정도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몸만 자란 것이 아니라 전생의 기억도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한 세계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칼키가 살아가는 세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다르다. 불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수라나 야차 등 불가의 존재들도 함께 살아간다. 이들의 존재가 소설 속에서 특출 나게 돌출하지 않고 그런대로 잘 묻어가는 것은 작가의 필력 때문인 것 같다.  

 

 정각당에서 살아가는 교의 임무는 반야경이란 경전을 지키는 것이다. 뭐 지금 우리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경전이지만 소설 속에선 금기시 되는 경전이다. 작가는 이 경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한 편의 소설로 묶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칼키가 어느 날 갑자기 공격한 전륜성왕의 기사들에게 자신의 보호자이자 반야경의 수호자인 교를 빼앗기면서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진다. 변화 없이 한 세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던 작업에 조그마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교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많지만 칼키의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이런 중에 모뎀을 다루는 아수라 무찰린다를 만나 도움을 받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진 여자에게 팔려간다. 힘이 부족한 그가 겪게 되는 고통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조금씩 힘을 키우고, 그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이런 전개를 빠르게 펼치기보다 세밀하게 그려낸다. 빠르고 강력한 활약상이나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독성은 뛰어나다. 쉽지 않은 불교 용어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나름 잘 녹여낸 것이다.  

 

 불교의 세계로 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작가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뛰어나지 않다. 장치와 배경에 공을 많이 들여 인간의 심리 묘사에 조금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 중간에 나왔지만 삼각관계들이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약간 돌출된 느낌을 준다. 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반전 같은 장면들은 사실 사람에 따라서는 반감도 많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지적했지만 에필로그는 정말 필요 없는 사족이다. 윤회를 거듭 보여주면서 여운이 사라졌다. 가독성은 나쁘지 않으나 장르문학이 가져야할 재미는 좀 부족하다. 시원하고 단숨에 읽길 바랐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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