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2008년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을 선택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오키 상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에 대한 칭찬이다. 심사위원이 ‘질투가 날 정도’란 말에 과연 어떤 문장일까 궁금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였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간결함보다 행간에 숨겨진 감정의 파편들이 더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심심한 것 같고, 부정확한 감정이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솔직해지기 쉽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다.  

 

 남쪽 섬에서 1년 2개월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거대하거나 감정이 격하게 표현되지는 않는다. 화자인 세이는 섬 학교의 양호 선생이다. 남편은 화가로 섬에서 작업을 한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들 사이에 아이는 없다. 둘의 사이는 좋다.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는 어느 날 신학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선생이 온다. 음악 선생 이사와다. 그의 첫 인상은 결코 시선을 끌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만남이 이어지면서 감정은 조금씩 자라난다. 이 감정을 작가는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녀의 행동과 사소한 변화 속에 담아낸다. 약간 격렬한 사랑을 기대했는데 그런 장면은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조금 심심하다.  

 

 조용하고 모두가 알고 지내는 듯한 섬에서 활기차고 사건을 만드는 것은 쓰키에다. 그녀는 유부남과 사귀고 있다. 이 유부남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녀를 찾아온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행동은 거침없다. 그 남자를 기다리는 것도, 만나는 것도 그녀의 삶을 살찌워주는 것 같다. 이런 그녀의 삶을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일 수 있지만 그녀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를 한 후에도 이 사건은 그냥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그녀의 이런 솔직함은 세이의 솔직하지 못하고 숨겨둔 감정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쓰키에와 함께 밋밋한 듯한 소설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시즈카 할머니다. 아흔을 넘긴 듯한 나이의 그녀는 세이와 상당히 사이가 좋다. 노구지만 활기차고, 나쁜 감정 없는 독설을 내뱉는다. 이런 그녀가 병의 징조를 보이고, 입원해서는 음란한 꿈을 꾼다. 그녀가 꿈속에서 외치는 남자의 이름은 과연 그녀의 남편일까 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녀가 세이에게 마지막에 한 말을 봐서는 아닌 것 같다. 이 할머니의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세이와 이사와를 은연중에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이가 이사와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와 대화를 하게 되는 계기가 할머니의 집에서 비가 샌 날이고, 할머니의 병원 입원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사와는 소설 속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의 과거는 거짓과 비밀로 쌓여있다. 작가는 결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시즈카 할머니가 결국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다. 무표정한 얼굴을 가졌지만 아이들과 놀 때면 열성적인 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어떤 감정의 조각들은 이런 의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가 세이에게 가진 감정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그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얼핏 드러나지만 확실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터널을 파나갈 때 제일 끝에 있는 지점을 채굴장이라고 한다. 터널이 뚫리면 채굴장은 사라진다. 터널이 뚫리지 않고 계속 파면 그 곳이 바로 채굴장이다. 이 둘의 관계가 바로 이 곳에 머물러 있다. 둘 사이의 터널을 뚫어야 하지만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잔잔한 듯하면서 격렬함을 머금은 감정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멈춰 선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이 시간들은 긴 인생의 한 순간 바람 같은지도 모르겠다. 뜨겁지만 결코 그 열기를 밖으로 말할 수 없는 바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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