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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컷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9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낯선 작가다. 제목으로 서평으로 이미 이 작품을 만났다. 한국 추리소설 시장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점에 이 책이 나왔을 당시 많은 호평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선택하고 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읽은 한국 액션 스릴러란 점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물론 오래전에 나온 책이기는 하다. 나의 게으름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다른 작품들 탓을 잠시 해본다.
암살자와 전직 형사의 대결 구도다. 정확히는 쫓고 쫓기는 관계라기보다 각자 자신의 삶을 그려내면서 엇갈린 시간을 맞추어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 이야기의 문을 연 것은 경찰 내부의 비리로 짤린 전직 형사를 민 사장이란 사람이 사건을 의뢰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한 킬러가 살해 대상을 쫓아 들어가 살인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두 장면의 시간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암살자의 살인이 세 번째로 이어지는 현장이라면 전직 형사가 나타난 장면은 이미 세 번째 살인이 벌어진 후다. 이렇게 작가는 두 시간을 다르게 배열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시간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그들은 동일 시간 동일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대결 구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다보니 추격으로 인한 긴장감은 약하다. 암살자의 현재와 과거를 비추어주면서 그녀의 삶의 굴곡을 드러내고, 전직 형사의 비루한 현실을 통해 경찰에서 떨어져 나와 점점 돈 벌레가 되어가는 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장면과 시간을 바꾸면서 때로는 거칠게 토해내고, 때로는 감상적으로 표현한다. 죽이고자 하는 킬러와 왜 죽이려고 하는 지 알아내려는 전직 형사의 대결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충돌 이전에 이렇게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한 발짝씩 나아간다.
킬러와 형사의 대결이란 점에서 김성종의 추리소설들이 먼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읽은 지 하도 오래되어 대략적인 것만 생각나는 그 작품들이 <B컷>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난 것이다. 그 작품들을 지금 읽는다면 과연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 추리소설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생각하면 이 작품에서 그를 연상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 같다. 물론 김성종 또한 외국의 다른 유명작가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영향력을 뒤로 하고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어떨까? 간결한 문장과 빠르게 바뀌는 장면들은 영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냉정한 듯하면서 여린 킬러의 내면과 점점 자신을 파괴하는 황 형사의 모습은 각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옮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장점에서 흠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강하게 터지는 액션이나 반전 등이 없다는 것과 황 형사에게 의뢰한 목적이 너무 빨리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읽은 책 때문인지 첫 문장을 킬러가 사람을 죽이고 속으로 삼켰던 그 말로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 문장은 “이제 하나 남았다.”(19쪽)다. 너무 뻔한 감이 있지만 강한 인상을 주면서 킬러의 의지 혹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