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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제목을 잠시 생각해본다.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어떻게 봐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신들을 보았고, 그 신들과 함께 사는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상념들을 옆으로 잠시 치우고, 저자가 보여주려고 한 인도에 집중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무지함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했다. 몇몇 아는 것도 나왔지만 대부분 낯선 장면과 풍경과 지식들이었다. 그 거대한 사유의 흐름 속에서 예전에 가지고 있던 단편을 잠시 되새기고, 생각한다.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이란 작은 제목이 밑에 있다. 이 책은 일반 여행서적이나 기행문과 다르다. 목사인 저자가 우파니샤드란 책과 함께 인도를 여행하고, 사색하고, 깨닫고,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단순히 풍경이나 이색적인 것들을 보여주었다면 쉽게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란 거대한 철학의 공간에서 그가 보고 느낀 수많은 것들을 우파니샤드란 경전을 통해 사유하고, 깨달으면서 풀어내고 있다. 가끔은 잊고 있거나 새로운 사유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사실 목사란 사전지식을 가지지 않고 보았다면 인도 전문가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기독교의 색채를 많이 지우고, 우파니샤드 경전으로 통해 인도를 들여다본다. 물론 가끔 그의 직업이나 신앙이 드러나긴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나 시선 속에선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더 우선된다. 그래서인지 부담 없이 읽히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사색에 잠긴다. 덕분에 읽는 속도는 더디게 나간다. 다른 여행서적이라면 두 시간이면 될 책이 그 곱절 이상 걸렸다.
모두 열두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장마다 하나의 사유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점점 속도에 빠져들고, 조그마한 일에 짜증을 내고, 조금 더! 를 외치며 욕심을 내고, 자신이 주는 스트레스에 압박을 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뭐 이런 사유를 하게 만드는 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낯선 인도와 우파니샤드란 경전을 통해 들여다본 것은 처음이다. 저자가 몇 번이나 읽었지만 그 의미를 몰랐던 것을 발로 순례처럼 다니면서 그 고갱이를 온몸으로 만나고자 했다는 말뜻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책 곳곳에서 예전에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도가나 불가의 사유와 유사한 곳을 발견하면 세계를 보는 현인들의 깨달음에 감탄을 한다. 단순히 우화나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거나 보았던 것을 저자의 새로운 시선으로 만나게 되면 반갑고 흥미롭고 생각에 잠긴다. 신과 자신을 다르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외치는 장면과 ‘자비보다는 차라리 무심이 낫다’란 표현에선 나와 너의 경계와 사이와 구분을 짓던 나를 반성한다. 저자가 수없이 우파니샤드를 읽고 인도를 발로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이해했던 것을 한 번의 독서로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우파니샤드나 인도를 조금은 더 알게 하는 발을 내딛은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