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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호모오피스쿠스란 단어를 보고 작가가 새롭게 만들어낸 단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이 단어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책의 원제도 ‘When we come to the end'다. 그래도 혹시 해서 검색을 했다. 나오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만든 조어가 아닐까 추측한다. 최근에 이런 신조어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 책에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책에 대한 설명 중 카프카가 나올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월스트리트 몽키>를 생각하면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짐작은 몇 쪽을 읽기 전에 깨졌다. 먼저 힘들었던 것은 화자가 누군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개개인의 이름이 나오거나 우리란 단어 속에 숨겨진 화자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혹시 어딘가에 나오지 않을까 하고 집중을 하였지만 쉽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책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읽는다면 추측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배경이 되는 장소는 광고회사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삶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선을 그려내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나오면서 조금 혼란스럽다. 강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낯선 외국 이름은 초반에 이미지 연결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앞에 나온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서 이미지를 그려본다. 이것은 뒤로 가면서 한 명 한 명 인상을 그려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그들의 일에 대해서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광고회사니 당연히 멋진 카피나 광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리해고와 개인들의 신상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다보니 나의 존재는 더 뒤로 숨게 되고, 이야기는 하나의 미로 속에서 맴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카프카의 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문장은 잘 읽힌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만 그렇다.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고, 한순간 흐름을 놓치면 헤매기도 한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이어지고, 개인에서 개인으로 넘어가고, 소문과 진실이 뒤섞이면서 진행된다. 이것이 잘 정리되어 읽기 편하게 진열되었다면 속도감 있게 단숨에 읽혔겠지만 작가는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다시 앞 이야기를 돌아보고 연관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곳곳에 심어놓은 풍자와 사실적이면서 가슴을 콕 찌르는 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직장인임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요즘처럼 직장인의 목숨이 파리 목숨 같은 현실에선 사장실에 불려가는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에 공감하게 된다. 짤렸지만 회사에 나오고, 회사로 돌아와 의자를 분해하려는 그들을 보면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난해하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문과 사실이다. 광고회사 대표 린의 소문이나 그들 내부에서 유통되는 소문과 사실들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 회사에서 늘 있는 일이기에 공감 한다.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자신을 잃어가는 그들이나 일이 없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창작하는 것이 실제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대목에선 희비가 교차한다. 정리해고라는 거대한 바람 앞에선 그들 모두 연약한 촛불이다. 다만 자신은 그 대상이 아니길 바라지만 언제 자신에게 불어올지 모른다. 현실적일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현실이 더 비현실적임을 생각할 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까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은 화자는 누굴까 하는 호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