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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일본드라마 특집극을 본 적이 있다. 귀머거리 아내와의 결혼을 다룬 것이었다. 칸노 미호 주연의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귀가 들리는 남자와의 결혼과 삶이다. 사랑으로 결합하여 힘들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예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에 대한 불편함이나 아이를 키우면서 들리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예상하지 못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그 한 편의 드라마로 단숨에 깨어졌다. 왜 이렇게 다른 드라마 이야기를 하느냐고? 바로 이 소설의 교코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슌페이는 어느날 우연히 공원에서 한 여자를 보게 된다. 퇴원 시간이 되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교코와 만남을 시작한다. 한 번이 두 번으로 바뀌고, 그녀를 불편함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보도국에서 밀려나 다른 부분에서 일하던 그에게 우연히 탈레반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었던 바미안 대불이 파괴되는 비디오가 들어온다. 이것은 그는 충격을 받고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소설은 슌페이의 사랑과 바미안 대불 파괴를 둘러싼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로 묶여있다. 그것은 관심과 목소리다. 청각장애가 있는 교코와의 사랑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면 바미안 대불 폭파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들은 그에게 새롭게 그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소리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교코와의 대화는 늘 필기로 이어지고, 소리가 제거된 그 대화는 그에겐 색다른 경험이다. 전화 대신 문자로 자신이 말을 전하고, 사소한 몸동작이나 행동으로 감정이나 자신을 드러낸다. 일에 빠져 정신이 없을 때 그를 떠난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자 삶이다. 작가는 교코의 행동이나 반응을 통해서 슌페이의 감정과 청각장애인의 삶을 드러낸다. 너무 당연했던 슌페이의 생각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새롭게 다가오고, 주변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주변의 소리가 사라진 것 같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가끔 섬뜩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낯선 삶을 들여다 본 그의 반응은 신선함을 받기도 하지만 크나큰 벽을 세운 것 같기도 하다.
바미안 대불의 폭파는 문화의 충돌이자 역사의 한 장면이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정복자들이 피정복자의 문화유산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유물들이 그렇게 획득된 것들이다. 최근에 와서 세계적인 여론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문화재 보호가 강화되고 있지만 자신들의 교리나 문화와 다른 유물을 파괴하는 데는 목적이 담겨있다. 바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수많은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그 사건을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진실 되게 보호하려고 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많은 인물들이 그 유적을 보호하려고 했을 테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유적일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와 다르고, 자신들의 나라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놓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다시 슌페이와 교코의 사랑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의도적인지 아니면 생략한 것인지 모르지만 교코의 과거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녀의 감정과 사랑이 슌페이의 시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보니 말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단지 문자나 손으로 쓴 글로만 전해지는데 그녀의 감정을 전달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슌페이는 수화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만난 시간이 짧아서인지 아니면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의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을 배제하고 있다. 그의 관심이 소리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가 만들어낸 고요함이나 소리 없는 세상이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기엔 쉽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