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아랑은 왜?>라는 소설이다. 불과 4,5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김영하란 이름은 낯설었다. 그 당시 이름을 알만한 작가들은 모두 이상 문학상에 실린 작가거나 아니면 2000년대 이전 일부 작가들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책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었던 시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만 열심히 읽던 시절이었다. 전작주의를 열심히 실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손에 잡히는 책들만 읽지만 말이다. 그 소설로 이름을 기억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그에 대한 평을 보면서 단편집을 읽었다. 장편처럼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 당시 같이 읽었던 한강과도 유사한 진행이다.   

 

 그의 활동은 1995년부터다. 사실 이 시절은 소수의 한국작가와 장르소설에 몰입하고 있었다. 허영심에 들떠 문학상 작품집은 열심히 읽었지만 그 외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런 시기에 김영하가 나왔으니 나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이름을 말하면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다닌다. 이력을 보면 적지 않은 책을 내었고(반 이상은 보았다), 국립 예술대학 교수에 라디오 방송까지 하였다고 한다. 상당히 바삐 움직이며 이름을 알리던 시절이었다. 비록 나에겐 낯선 과거이지만 말이다. 이런 그가 일상을 벗어나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 첫 기착점이 시칠리아다. 거기는 그가 방송국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곳이다. 낯선 유랑 여행을 떠나면서 한 번 방문한 곳을 선택했다는 점이 약간은 의외지만 그때와는 다른 일정으로 그 섬을 돌아본다. 그 여정은 결코 보통의 관광여행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휙~하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니고 방을 잡고 그들과 함께 머물거나 인사를 나누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여행을 한다. 그의 지식이 곳곳에 묻어나면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책 제목인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Memory Lost.'는 후기를 겸한 글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제목을 붙인 것은 무얼까? 여행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한국에서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물론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얼까? 생각해본다. 다시 책의 앞으로 돌아간다. 그가 왜 성공한 인생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났을까? 생각한다. 쌓여만 가는 읽지도 않을 책과 보지도 않을 DVD를 정리하고 그러면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 안에 있던 예술가를 찾고자 한다.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한편으론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그가 만난 시칠리아는 쉬운 길이 아니다. 로마에서 파업으로 기차가 다니지 않고, 버스와 배로 이동을 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늘 압박을 받는 정시 도착 출발이 이곳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나쁜(?) 상황에서 그 부부는 시칠리아 곳곳을 돌아다닌다. 한 곳에 집을 구해 며칠을 머물며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스쿠터를 빌려 도시 곳곳을 다닌다.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그 마을과 풍경이 빚어내는 역사와 현재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정보와 풍경이 만나 사색에 잠긴다. 만약 당일치기 관광이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자 직관이다. 작가의 글에서 만나는 소설이나 영화나 신화 등은 다시금 옛 기억을 불러오거나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토해낸다.   

 

 책은 쉽고 빠르게 읽힌다. 많지 않은 분량에 사진도 나름 풍부하기 때문이다. 현역 인기 소설가가 쓴 문장이니 몰입도도 높다.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유대감, 정, 여유, 느림, 자유, 따뜻한 마음 등등. 여행지에서 살짝 드러나는 작가의 과거 기억과 삶의 단편들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행지에서 겪은 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없는 것은 이 책이 여행서적이 아님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곳곳에 시칠리아 정보가 목을 길게 빼고 말을 건낸다. 따뜻하고 뜨거운 열기가 불어오는 시간엔 텅 빈 거리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며 안절부절 하지만 그마저 즐기는 순간이 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내와 함께 갔는데 그녀의 출연이 너무 없다. 가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도 많았다.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떠난 그의 여행에서 더 많은 것을 쌓아가는 그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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