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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솔루트 바디 ㅣ 크로스로드 SF컬렉션 2
박민규.배명훈 외 지음 / 해토 / 2008년 9월
평점 :
최근에 한국 장르 문학 단편집이 꾸준히 나온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장르문학이 한때의 호기심 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이런 꾸준함은 분명히 어느 순간 빛을 발할 것이다. 이 말은 바로 아직 그 빛을 발할 정도로 탁월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가끔 탁월한 작품들이 나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꾸준함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협이나 판타지나 추리문학의 경우는 어느 정도 궤도에 도달했다고 느끼지만 SF는 어떨까? 몇 권의 책에서 재미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 전반적인 수준은 아직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글을 올린 작가 몇몇이 활동하는 웹진 거울은 사실 환상문학 전문이다. 박민규, 서진의 경우는 장르소설가도 아니다. 물론 그라고 SF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배경을 두고 생각하면 이 소설집을 단순히 SF컬렉션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너무 광범위한 분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세계적인 SF 작품을 읽다 보면 이와 유사한 작품들이 나오기는 한다.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광의로 묶은 것은 아마도 척박한 한국 SF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일정한 수준에 올라있다. 박민규의 작품 <굿모닝, 존 웨인>은 너무 암울해서 그 유머가 웃음보다 허무함을 느끼게 하고, 서진의 <우리 반에서 양호실까지의 거리>는 현실과 가상공간을 엮어서 호러 분위기를 잘 연출했지만 흡입력이 조금 딸려 충분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표제작 <앱솔루트 바디>는 재미난 설정과 전개를 보여주는데 장편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체가 된 주인공과 그들 좇고 좇기는 사람들과의 대결이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송경아의 <우리 사랑 이야기>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의 독백으로 진행되는데 그 사랑이 애절하고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류형석의 <어떤 미운 오리 새끼의 죽음>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정해진 궤도 위에서 움직이며 아쉬움을 준다. 갑작스런 테러리스트의 돌출은 긴장과 재미를 반감시킨다. 은림의 <환상진화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전에 읽은 <할머니 나무>에서 보여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배명훈의 <조개를 읽어요>는 사실 조금 실망이다. 이전에 보여준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소품이기도 하지만 산만한 느낌을 준다. 다른 작품집에서 그의 소설을 읽고 얼마나 큰 기대를 가졌던가!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큰 것인지 모르겠다.
박애진의 <집사>는 집사 역을 하는 로봇의 감정이 상당히 돋보인다. 의도적으로 강하게 노출시키기보다 잔잔하게 감정을 깔아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이준성의 <고래의 꿈>은 사랑이야기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빛고래를 잡으려는 우주선을 중심으로 한 남자의 사랑을 노래한다. 영원히 피터팬이고자 하는 시몬스의 욕망이 눈길을 끈다. 유서하의 <플라스틱 프린세스>는 광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하다. 왜 그렇게 자신을 손상하여 몸을 바꿔야 했는지 명확한 이유가 없다보니 몰입하기가 더 힘들다. 내가 놓친 것인가? 박성환의 <꿈의 입자>는 꿈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꿈을 꾸는 소년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를 불러오지 못하고 뒤로 가면서 꿈과 현실이 뒤섞이면서 혼란만 가중시킨다. 좀더 장면을 분할하여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희자의 <지구의 아이들에게>는 역사에 대한 은유다. SF라는 형식을 빌려서 강자의 역사는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주는데 그 힘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서문에서 김탁환 씨가 ‘이 소설집은 현재 한국 SF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고 있다.’하여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에 동의한다. SF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 실려 있고, 좀 더 세련되거나 힘 있는 이야기가 부족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집이 계속 나온다면 더욱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