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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근 육백 쪽에 달하는 소설이다. 요즘 같은 연말 분위기에서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무리다. 보통의 장르 소설처럼 휙휙 넘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제38회 맨부커상 수상작이기까지 하다. 이름난 문학상 수상 작품들이 쉽게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아닌가! 또 이 책을 극찬한 살만 루시디의 <한밤중의 아이들>을 아주 힘들게 읽었던 기억도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예상들은 쉽게 무너졌다. 이틀 만에 모두 읽었다. 출퇴근 시간과 토요일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다.
이 소설은 예상보다 빠르게 읽혔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우리의 과거나 현실과 겹쳐 보이고, 불과 이십 수 년 전의 삶이 지금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 중 일부분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니다. 그 심층까지 헤아리지 못한 나의 책읽기가 옮긴이나 평론가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조금 많은 것을 담은 책은 이런 어려움이 늘 있다. 그것 때문에 읽은 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기는 한다.
인도의 한 지역인 칼림퐁과 미국 뉴욕을 공간적 배경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칼림퐁의 초오유는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사는 집이다. 전직 판사 제무바이와 그의 외손녀 사이와 요리사가 거주하고 있다. 뉴욕은 요리사의 아들 비주가 불법체류자로 살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인도인의 삶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 속에서 비교가 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전직 판사 제무바이와 요리사의 아들 비주다. 제무바이는 가난한 집 아이지만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공동체 최초로 영국 유학을 가게 된 인물이다. 그 힘든 과정을 거쳐 그는 인도 사회의 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사를 역임했다. 성공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비주는 힘들게 미국 비자를 받아 들어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임금의 노동뿐이다. 그것도 언제 이민국에 발각되어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다. 가난한 나라 인도를 떠난 두 인물의 너무나도 다른 모습은 그들의 출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제무바이는 식민지 관리의 필요에 의해 육성된 인물인 반면에 비주는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희생자인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모두 그 지역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란 점이다. 그 결과는 다르게 나오지만.
전직 판사와 비주가 대비되는 외국생활을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다른 경험을 했다면 외손녀 사이와 그녀의 남자친구 지안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른 경험을 한다.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 그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네팔계 인도인들의 폭동으로 다른 입장과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들의 갈등과 애증을 보면 제무바이의 과거가 생각난다. 몇 년의 짧은 유학 후 그가 느낀 자기 공동체 사람들과의 괴리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현실의 높은 벽이 자신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자신과 전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사이와 지안의 관계 속에 드러나는 인도의 문화와 민족 갈등 모습은 다른 매체에서 가끔 보았지만 피상적이었다. 이것을 우리의 부의 분배와 지역 갈등과 연결시키면 묘하게 유사한 점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유사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바로 비주의 삶이다. 그린카드를 위해서라면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다고 외치는 대목과 요리사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지리도 가난하여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그곳에서 미국의 기회의 땅이자 부의 상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힘든 일을 하는지 모르는 아버지와 그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신에게 열리지 않는 기회의 문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비주를 보면 7-80년대 우리의 이민사 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비자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거짓말을 하고, 쫓겨나고, 울부짖는 모습은 남의 나라 풍경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많은 대목 중 한 곳이 인상 깊다. 바로 자신의 성공에 장애였던 아내를 내치고, 그 얼마 후 생긴 딸마저 의절한 그가 외손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사이의 말투와 태도가 자신과 똑같기 때문이다. 서구화된 인도인이고, 인도와는 소원해진 인도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뒤로 가면 그가 키우는 개 무트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다시 그의 삶을 드러낸다. 다른 수많은 문제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가 개의 실종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한다. 인도인들에겐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판사의 이전 생활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행동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빠르게 읽힌다. 문장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서 그 공간과 시간 속에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재현한다. 지금도 책을 생각하면 이것저것 새롭게 떠오르는 단상들이 있다. 네팔계 인도인이나 비주의 뉴욕 생활이나 요리사의 삶이나 칼림퐁의 조연급 인물들의 허위와 허식들. 이제 예전의 미국으로 가던 우리의 이민사는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온 수많은 아시아 인물들의 이민사로 바뀌고 있고, 비주가 그렇게 고생하던 뉴욕의 저임금 생활은 한국의 불법체류자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저런 단상들이 이제 조금씩 이 책의 가치를 더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