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의 수수께끼 -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90
나루미 쇼 외 지음, 유찬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두 번째로 읽는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 추리 단편선이다. 출간순서대로 읽을까도 생각했는데 청색을 찾지 못해 비교적 얇은 흑색부터 읽었다. 적색에선 그래도 아는 작가들이 좀 있었는데 이번 작품선에는 읽어본 작가가 한 명도 없다. <연애 시대>의 작가 노자와 히사시도 이름만 알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선입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너무 정보가 없다보니 끝까지 읽으면서도 흐름과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이 미스터리에서 장점이 아니냐고? 보통의 미스터리라면 분명히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선에 실린 두 작품은 추리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 그래서 읽으면서 책의 장점을 흡수하는데 방해가 된다.

 

먼저 추리소설 같지 않은 두 편을 먼저 이야기하자. <화남(花男)>은 중이염에 걸린 렌지라는 남자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 그는 연상의 아내와 그녀가 낳아온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들과의 일상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있다. 친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인지 아들은 어리광도 부리지 않고, 그녀는 더욱 깍듯이 그를 대한다. 그의 일상은 충실한 남편과 조금 거리가 있다. 가족을 성실하게 부양하지만 그에게 달려드는 여자들을 냉정하게 거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년 전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태내에서 죽은 기억도 가지고 있다. 이런 일상을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미스터리를 느낄 만한 장면을 포착하기 힘들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는 혹시 다른 이야기가 더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조차 들었다. 긴 이야기의 한 토막을 잘라낸 느낌이라고 할까.

 

<목소리>는 두 남자의 만남과 헤어짐과 추억을 다룬다. 강에서 낚시를 하던 다이치는 물에 빠진 다노쿠라를 구한다. 이 강에선 다이치의 아버지가 죽었다. 왠지 미스터리의 냄새가 풍긴다. 혹시 그가 범인이고 복수를 다루는 것일까 추측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스무 살의 다이치는 다노쿠라로부터 아버지의 추억과 기억을 얻게 되고, 다노쿠라는 이번 여행으로 점점 잃어가는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이치의 아버지와 강과 낚시 관련된 기억과 추억이다. 살인사건에 집중하느라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임에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저벅 저벅>은 잔혹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29년 전 10살 나이로 그녀는 중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 그날의 기억은 그녀의 삶을 지배한다. 한때 그 기억을 털어내기 위해 그 남자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기억은 현재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남자를 거부하게 만들 정도로 강했다. 소설은 그녀의 고백으로 이어지는데 사실 그때의 남자에 대해서는 중간쯤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성추행에 대한 피해와 함께 그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복수를 위한 마지막 반전이 뒤끝을 강하게 남긴다. 그냥 무난하게 읽히다가 마지막 장에선 삶의 모순과 점점 피어나는 사악한 기운에 깜짝 놀란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한숨>은 사라진 아인슈타인 박사의 바이올린을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노벨 상을 수상한 아인슈타인은 일본으로 온다. 짐 운반 과정에서 박사의 바이올린이 바뀌는 사고가 발생한다. 고가의 물품은 아니지만 애정과 추억이 실린 바이올린이다. 이 사건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면 일본과 독일의 외교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그를 초대한 출판사는 게이오 대학의 도도로키 교수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어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교수는 탐정 역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 과정을 보면 보통의 고전 추리소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마지막 사건을 풀어내는 방식도 역시 크게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숨겨진 정보들이 마지막에 쏟아지면서 작가만의 미스터리가 된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특히 돈가스 덮밥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칭찬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