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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이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읽기 전에도 약간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읽은 후는 더 심하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냥 표지를 탓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표지가 이 책이 지닌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서양 추리소설 중 이 책처럼 강한 인상을 준 작품도 드물고, 사람을 끌어당긴 책도 없다. 띠지에 흔히 사용되는 통속적인 문구가 정말로 다가오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엔 사실이다. 책을 받은 후 다른 책처럼 놓아두지 않고 있다가 방을 정리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대단히 매혹적이다.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스웨덴의 복지국가의 표본이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최소한 사회제도란 측면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높은 복지수준과 안락해 보이는 삶 속에 숨겨진 비밀은 그래서 더 자극적인지도 모르겠다. 재벌 집안의 오랜 미스터리와 역사 속에 존재했던 나치의 흔적과 부와 권력에 아부하는 기자들의 모습은 언론에 포장되어 비쳐지는 스웨덴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작가는 그 모습의 일부를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속도로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늪에 빠진 것처럼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매년 11월 1일이면 연례행사처럼 꽃이 보내어져 온다. 여든두 번째 생일날이다. 하나의 미스터리를 암시한다. 그리곤 한 남자의 소송 종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소송은 패소했다. 패소한 인물이 바로 주인공인 미카엘이다. ‘밀레니엄’이란 잡지의 편집장인 그는 항소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가 베네르스트룀 사건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말한다. 그 앞에 펼쳐질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여기서 이야기는 한 여자로 넘어간다. 그녀는 또 다른 주인공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다. 그녀는 보안업체에서 근무하며 탁월한 조사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인관계는 부족하다. 아주 많이. 그녀의 조사대상 중 하나가 미카엘이다. 이들의 만남은 조사자와 그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냥 조금 평범한 시작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특별히 강렬하게 자극적인 것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미카엘이 소설 속 미스터리 중 하나인 38년 전 반예르 집안의 하리에트 실종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빨려 들어가듯이 끌려들어간다. 거대한 재벌의 손녀딸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많은 공권력과 사적 인력이 동원되었겠는가. 그리고 그 조사의 주체인 헨리크 반예르가 38년간 그 미스터리를 풀기위해 노력했고, 그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다. 또 그녀가 사라진 그날은 섬과 이어주는 다리가 사로로 막혀있었다. 섬 자체가 거대한 밀실로 변한 것이다. 밀실미스터리의 조건에서 자신들의 한계를 절감한 그가 외부에서 사람을 데리고 와 미스터리를 풀려고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들에겐 제3자의 새롭고 날카로운 시각이 필요했다.
38년 동안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사건을 다시 뒤져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거대한 재벌이었다가 점점 약해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반예르 가문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집안의 역사를 조사한다는 것은 그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왜 그녀는 사라졌을까? 죽었을까? 그럼 시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매년 오는 꽃은 누가 보내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작가는 표면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진행한다. 그러면서 리스베트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어간다. 둘이 만나는 순간부터 이전에 있던 수많은 가정과 추측이 하나의 결과로 나오게 된다. 그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추악하다. 그 바닥을 보면 볼수록 혐오스럽고 놀라운 추악한 사실들이 드러난다.
소설은 각 장마다 놀라운 스웨덴 통계자료를 인용한다. 스웨덴 여성의 18%가 살면서 남성의 위협을 한 번 이상 받은 적이 있다거나 46%가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거나 13%는 심각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성폭행 당한 여성 중 92%가 고소를 하지 않았다는 자료다. 세계최고의 복지국가란 이미지 속에 숨겨진 이런 통계자료는 이 소설의 부제인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과 글 속에서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드러내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다.
모두 읽고 나면 이 소설에서 다룬 트릭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만약 트릭에 집중했다면 조금 싱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가치는 실종 사건을 둘러싸고 드러나는 반예르 가문의 추악한 과거와 두 주인공의 매력에 있다. 천재 해커에 정신장애가 있지만 카메라 같은 기억을 가진 사회부적응자인 리스베트와 오는 여자 막지 않고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미카엘을 작가가 치밀하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다음 권을 기대한다. 아니 10권을 기획했다가 3권까지 내고 죽은 작가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정말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