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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맛집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십 수 년 전인데 그 당시는 지금처럼 매체에 노출이 된 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잡지나 신문 등에 맛있다고 소문나거나 통신 등으로 입소문이 난 집이었다. 그 당시도 맛있게 먹은 집은 많지 않았다. 맛있어 몇 년을 다닌 집은 그 후 친구들과 함께 가 맛을 본 후 맛이 변했음을 알고 이제는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 책 한 구석에 그 집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정말 공감한다. 그래도 아직 맛있는 집에 대한 욕망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매체에 노출된 집보다 먼저 먹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더 신뢰하면서 찾아가지만 좀처럼 입맛에 맞는 집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시간과 거리 때문에 가지 못하는 식당들이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식당들이 모두 일요일에는 쉬니 토요일 점심시간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몇 개월 만에 찾아가니 아주머니가 오랜만에 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후로도 꽤 시간이 흘렀다.
언제부터인가 주말이면 내가 가는 식당이 정해져 있다. 다른 곳도 도전해봄직한데 좀처럼 이 식당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동안 자주 가면서 소위 말하는 인이 박힌 것인지 아니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들에 대한 실망이 쌓여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새롭게 발굴한 식당은 줄기차게 도전한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면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날 음식이 너무 짜거나 밋밋하여 별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중에 내가 자주 나가는 도심에 맛있다고 저자가 말하는 식당이 나오면 책에 조그마한 표시를 한다. 혹시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데리고 가서 맛을 보기 위해서다. 저자의 말마따나 만약 맛집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면 아마도 상당히 아쉬워하며 인터넷 검색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다.
이야기는 모두 네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추억, 정성, 머리, 이야기다. 이 중 셋은 음식관련 만화나 책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지만 머리는 조금 낯설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이 단순히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미각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공을 들인 끝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이 쌓여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가 맛의 기억과 추억과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보면 언제나 자연과 사람이 있다. 그들의 긴밀한 관계와 공생이 가슴속으로 머릿속으로 다가오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만든다.
사실 나는 맛에 둔감한 편이다. 친구나 선후배들과 식당에 들어가 먹다보면 그들이 맛이 없다고 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그들이 맛있다고 한 식당의 음식에선 가끔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상경한 아버지를 모시고 북어국집에 갔는데 다행히 맛있다고 하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예전에 한 식당에서 식당 아줌마에게 맛없다고 바로 말씀하신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자주 갔던 냉면집 기억도 난다.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너무 심심한 맛이라 시장 냉면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그런데 자주 그 집에 가다보니 소문난 다른 곳 냉면은 조미료 맛이 너무 강했다. 다시 강한 양념이 담긴 냉면을 먹다보니 다시 그 집 냉면이 심심한 맛으로 느껴졌다. 한 번은 어머니를 모시고 갔는데 맛없다는 말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참 난감하기도 했다. 저자가 말한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입이 거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음식에서 맛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은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물론 맛집도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저자의 추억과 이야기 속에서 잠시 머물 뿐이다. 그의 추억과 이야기를 하나씩 감상하다 보면 나의 경험과 부딪히는 곳도 있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많은 맛있는 식당들이 있음을 보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아! 수많은 이야기 중에 주목해야 할 것 하나. 뭐 책 속에서 주목할 것이 한둘이겠냐 만은 일단 하나만 말하자. 그것은 식당에 별 달기에 대한 그의 글이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 식당에서 그런 행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와 그들의 장인정신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절로 공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별 달기가 정착할 수 있는 식당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단 그 식당들은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