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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평점 :
연수 200만엔, 평범한 외모, SF평론을 꿈꾸며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신이치에게 어느 날 여신이 다가온다. 3살 연상의 그녀는 연수 800만엔에 그보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에 탁월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냥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과의 데이트를 받아들인다. 횡재다. 하지만 수상한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와의 하룻밤은 황홀하다. 청혼을 한다. 그리곤 둘은 결혼한다. 이제 그 횡재는 새로운 재앙으로 다가온다.
사실 리카코가 집에 신이치를 들이지 않는 순간은 집안에서 뭔가가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흔히 말하는 살인이나 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상상했다. 하지만 결혼 후 드러난 사실은 이보다 더한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마는 이 여자 정리정돈이나 청소에 대한 개념이 없다. 높은 수입을 위한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 주변을 정리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남편이 일주일간 출장간 사이 집은 엉망으로 변해 곰팡이까지 필 정도다. 그녀 주변엔 그녀처럼 탁월한 능력에 외모까지 겸비한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왜 키 작고, 수입 적고, 출신 대학 수준 낮은 남자와 결혼한 것일까?
작가는 재미나게도 이 상황을 남자의 상상으로 채우면서 반전을 노린다. 결혼한 후 2달 만에 임신 4개월이라고 한다. 그녀의 너무 지저분한 일상과 순간순간 폭발하는 성격에 지친 그가 이혼을 생각할 무렵 터진 사건이다. 이 때문에 일단 이혼 생각은 유보다. 하지만 그녀 주변에 보이는 엄친아 친구의 존재는 혹시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 있다는 상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주변 사항이 이런 의문을 더욱 부채질한다. 작가의 이력을 알 수 있게 한다.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로 요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집중해서 읽다보면 이 상황 속에 담긴 남녀의 역할이나 고정관념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당연히 육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며 신이치의 고난을 단숨에 역전시켜버린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가사와 육아와 직업까지 병행하면서 했던 일을 신이치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하고 불평하는데 작가는 극 중 한 편집자의 말을 통해 강하게 반론을 펼친다. 순간 뜨끔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들의 행동과 리카코의 행동을 비교하면 더 분명히 드러난다. 또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후 신이치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하여 보여주는 행동에 대한 여자들의 반응은 한두 번과 매번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누가 남의 아이를 매번 즐겁게 보아주겠는가?
빠르고 즐겁고 아슬아슬하면서 유쾌하게 읽힌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전개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리카코의 행동과 한 명의 남자에서 아버지로 남편으로 성장하는 신이치의 모습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현실이 세밀하게 살아있는 상황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역지사지의 고사성어가 이 책을 읽을 때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