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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책을 선택했다. 최고의 활극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그러나 약간 삐딱한 내가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왜 그런 입소문이 났는지 알게 되었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술술 넘어간다. 매력적인 주인공 앙드레 루이의 변신은 이 이야기에 가속도를 붙여준다. 세밀하게 분석하면 약간 어색한 대목도 있겠지만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그의 대활약은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한다.
처음 소설이 나온 것이 1921년이다. 그 후 두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소설 속 배경인 프랑스 혁명이 더 관심의 대상이다. 유럽사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온 그 혁명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자연스럽게 프랑스 혁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혁명은 부수적이다. 작가는 혁명에 찬성하지만 그 혼란의 시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인물들의 등장이 괜히 반가운 것은 아직 내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쉽게 빠져들었다.
앙드레 루이는 시골변호사 출신이다. 만약 절친한 친구 빌모렝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냥 “조롱할 줄 아는 재능과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갖고 태어났다”는 말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혁명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죽는 순간 그는 귀족 다쥐르 후작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그 맹세를 단숨에 실천할 권력이 그에겐 없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돈키호테가 풍차에 돌진하는 것처럼 무모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에겐 자신도 몰랐던 재능이 있었다. 사람을 선동하는 언변이다. 이제 그는 돈키호테가 아닌 풍차를 돌리는 바람으로 변한다. 우연히 발견된 재능은 특권계급에 의해 수배자로 전락하게 만들고, 그는 여동생 같은 알린의 도움을 도망친다. 여기서부터 변신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책의 제목인 스카라무슈 역을 맡은 배우에서 검객까지.
소설의 재미는 빠른 전개와 주인공의 성공에 있다. 물론 그의 숙적인 다쥐르 후작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서 늘 성공하는 그를 보면 좌절이란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웅변으로 군중을 사로잡고, 처음 올라간 무대에서 관객을 휘어잡고, 검을 쥐고는 최고의 검객이 되었다. 중간 중간 그의 바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도망을 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이 도망은 언제나 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점이 흠이라면 흠이기는 하다. 긴장감이 약하고, 뒤로 가면서 너무 뻔하게 비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대의 스릴러나 모험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 시대가 다르니 당연하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과 빠르게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냉소주의자가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그의 숨겨진 열정만큼 강렬하다. 그 변혁의 시기에 단순히 끌려 다니지만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습은 그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냉소적인 외면 속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열정은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 속에서 더욱 빛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 비록 나의 무지로 한계에 부딪히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