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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책 띠지를 보면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의 결합이란 문구가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대단한 유혹이다. 그리고 2007 페미나 상 수상! 이란 문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작가가 페미나 상을 받은 작품은 <영화의 입맞춤>이다. 출판사의 의도적 실수일까? 그리고 도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없는가? 하고. 이런 단서는 소설을 읽으면서 끝까지 되새겨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직설적으로 풀어내면 여장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극과 슬픔이 이 문장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화자이자 주인공 펠릭스가 운영하는 아쥐라 보험 고블랭 대리점에 화재 사건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고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화자는 현장에 달려간다. 집은 불타고, 그 집 한 곳에 살던 모녀의 생사를 걱정하는 고객을 만난다. 하지만 화재 현장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다시 현장에 와서 그 집을 둘러보고 간 것도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 자동차 뺑소니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고의 여파는 펠릭스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그를 불안하게 여긴 직장 동료들이 그에게 휴식을 제안한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잃은 아들 콜랭에 대한 회상과 추억에 빠지고 삶은 평범함을 벗어난다. 그리고 그 사고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추리하게 만든다.
작가는 단순히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슬픔이나 범인 찾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콜랭과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아들 때문에 변하는 아버지에 무게를 더 둔다. 아버지 없이 자란 그가 아이를 낳고 사라진 아내의 부재로 인한 고생과 아들을 키우면서 누리는 기쁨을 표현하면서 은근히 슬픔과 비극을 깔면서 뒤에 나올 충격을 조금씩 쌓아놓는다. 그리고 아들을 키우면서 점점 변하는 그의 내면적 외면적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외양은 아들이 바란다는 이유로 엄마로 분장하게 되고, 내면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두 번째 본성을 발견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처음 바뀐 모습에 혼란을 느낄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자신을 진짜 여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아이에 대한 애정을 점점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냥 여장을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 과정에 아들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문제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추리문학이란 말에 어떤 것을 추리해야할 지 많이 생각했다. 도입부에 나온 사라진 모녀일까? 아니면 점점 변하는 펠릭스의 정체일까? 그도 아니라면 뺑소니 범인에 대한 정보일까? 이런 의문은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가정을 세우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뒤로 가면서 무참히 깨어진다. 기존 추리소설에서 본 장면을 대입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가정에서 하나의 답은 맞추었지만 다른 하나는 너무 생각이 많았던 탓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비극과 슬픔과 놀라운 마무리는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단서를 흘려보낸다. 또 이 과정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감정이입하게 만든다. 끝으로 오면서 점점 확실해지는 비극의 실체는 한 남자의 과도한 애정과 소유욕에서 생긴다. 그 비극에 놀라움이나 아픔을 느끼기보다 강한 슬픔을 느낀다. 아! 립스틱 ‘붉은 애무’를 짙게 바르고 길을 나서는 그의 모습은 비극의 중심에 나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