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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제39회 맨부커 상 수상작이다. 영어권 최고의 상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상이다. 이 상을 수상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몇 권은 정말 어려웠고, 몇 권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 이 소설은 어떨까? 읽는 내내 상상과 현실의 교차 속에서 그 명확한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왠지 모르게 뭉실하게 다가오면서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그리고 윤정모 씨의 ‘슬픈 아일랜드’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화자 베로니카의 오빠 리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화자는 그 자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과거의 흔적을 좇는다. 이 과정은 결코 사실적이지 않다. 상상력이 발휘되고, 자신의 감정이 개입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설은 쉽고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그 상황을 한 번 더 음미하고,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의 삶까지 활기차지 못한 현실은 그 죽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 답을 찾지 못할 때 과거로 돌아가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베로니카도 현실에서 리엄의 자살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의 한 사건을 삶의 일탈과 변화의 시발점으로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할머니인 에밀리와 어머니의 과거를 되짚어온다. 그 추적은 어쩌면 사실일 것이고, 어쩌면 단순히 그녀의 상상일 수도 있다. 할머니 에밀리와 관련된 두 남자의 이야기는 대부분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 삶의 한 경험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머니다. 초반에 존재가 너무 희미해서 그 윤곽만 보인다고 했다. 살아있고 열두 아이를 낳은 그녀가 존재감이 없다니 이상하다. 열두 아이를 낳고 일곱을 유산한 그녀에게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일까? 최소한 베로니카에겐 그 어머니가 자신의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베로니카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얘야.”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어머니와의 관계와 달리 리엄은 함께 성장하고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자살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실 속에서 부족하고 공허한 삶의 공간으로 파고들어 과거로의 긴 여행을 떠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소설은 자살 소식부터 장례식을 위해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 속에 베로니카의 기억과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리엄에 대한 추억과 상상이 큰 줄기를 이루면서 자신의 과거도 함께 나온다. 그 많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추억 속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이것은 장례모임에서 잘 드러나는데 각자의 안부나 현재만 묘사할 뿐 공통된 추억에 대한 회상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공유하나 추억은 함께 하지 못하는 형제들의 모임은 결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편과의 삐거덕거리는 관계는 그녀가 자신을 찾기 힘들게 만든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데 결코 새롭고 변화 있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운명이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함이고, 다시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긴 여정은 가족의 해체와 결합이란 현실과 바람을 베로니카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되살려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