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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몽키
데이비드 블레딘 지음, 조동섭 옮김 / 예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남성판 ‘악마는 프라다는 입는다’다. 경쾌하고 발랄한 문장으로 상사들의 가혹한 업무 지시에 치이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을 이야기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여자들이 많이 꿈꾸는 패션 잡지를 배경으로 환상을 깨트렸다면 여기선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를 등장시켜 놀라움을 주고 꿈을 깨부순다. 일주일 100시간을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과 묘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인들이 아직도 이 이상으로 하는 경우를 이전부터 보아왔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다. 중얼이, 밉상스타, 까칠깐죽, 찌질곰탱, 알랑방귀, 에르메스 등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한 명 한 명이 개성이 강하고, 재미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일에 치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단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성공을 향해 나아가기위해 자신의 인생을 일에 던지고, 친구도 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조직은 끝없이 일을 쏟아내고, 잠시의 휴식도 인정하지 않는다. 편하게 생각하면 그런 직장 집어치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야망이 있는 그들이 떠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직장이다.
화자 중얼이는 상사가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업무지시에 일요일 밤 여자친구의 생일도 챙기지 못한다. 그리고 차인다. 쌓인 피로는 이어지는 밤샘으로 더욱 무섭게 쌓인다. 그러다 잠시 잠에 빠진다. 일어난다. 시간은 상사가 시킨 시간을 지났다. 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밉상스타가 그의 작업을 마무리한다. 다행히 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알랑방귀로부터 질책을 당한다. 이렇게 밤늦도록 일하고, 상사에게 재촉당하고, 욕을 얻어먹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 인권도 야근수당도 찬란하게 보장된 미래도 없다. 다만 살아남아 자신이 바라는 세계로 가기만 기다릴 뿐이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
경력을 쌓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그곳은 결코 쉽지 않다. 상사들은 언제나 방금 지시하면서 조금 후에 보자고 하거나 퇴근 무렵 일을 던져주고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한다. 예전 생각이 난다. 쏟아지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조그마한 실수로 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조그마한 휴식은 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도 결코 만만한 장소가 아니다. 언제 상사들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얼이에겐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록 스트레스에 의해 황당한 만남으로 이어지지만.
일. 일. 일. 일로 가득하다. 상사를 씹는 즐거움도 있다.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보다 비교적 쉽게 일을 처리하는 놈도 있다. 멋진 외모로 자신들이 꿈꾸는 멋진 여자를 녹이는 빽 좋은 놈도 있다. 일 때문에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욕을 먹는 중얼이도 있다. 밑의 직원을 잠시라도 쉬게 놓아두지 못하는 놈도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직원을 탓하는 직원도 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투자금융사라는 공간에 집어넣고 한 애널리스트의 시각으로 멋지게 되살리고 있다. 재치 있는 문장과 풍자적인 시선이나 현실적인 풍경들은 이런 강한 등장인물과 잘 어울린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직장인의 불안과 비애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나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루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