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 나 자신도 물론 겪었다. 하지만 작가의 글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입시의 열기 속에 잠시 투정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주변의 시선과 나 자신의 나약함이 큰 일탈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그 시대와 나의 시대가 다르고, 내가 지금의 10대, 20대와 다른 점을 느낀 것을 생각하면 시대의 큰 변화를 짐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대 탓만 하기엔 그가 걸어온 길이 너무 힘겹고 무겁고 부럽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흥미롭다. 주인공 준이 월남으로 파병 가기 전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복귀하는 그 순간 한 친구의 그림자를 보게 되고, 이 친구를 화자를 내세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는 또 준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다시 다른 친구가 이어받아 전개된다. 이 구성은 준을 둘러싼 환경을 준의 시점과 친구의 시점으로 동시에 보여주면서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과 환경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조금만 삐끗하면 전체적인 흐름과 균형이 깨어질 수 있다. 작가는 이 균형을 잘 맞추면서 준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등장시켜 다양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구성에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각 개인들에 맞춰 좀더 문장이나 문체를 바꿔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한국의 십대는 참으로 피곤하다. 물론 대학이란 것을 포기하고 살면 편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포기하겠다고 외치면 결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선생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학력이 되지 않은데도 교장들이 억지로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모아서 자율학습(?)이란 것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강남의 학교들은 자율학습도 없이 바로 하굣길에 오르는데 그 이유가 학원 때문이라니 놀라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뭐 자율학습이란 것도 학원을 핑계되고 빠지는 학생들이 있다고 하니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교장들의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악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또 소설 속 한 장면인 성적순으로 발표하는 행동은 이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은 작가가 그 시대에 고민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절은 아직 낭만이란 것이 조금은 더 남아있을 때가 아닐까 조금은 부럽다.

 

10대 후반은 누구나 방황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일탈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한다. 경쟁에서 한 발만 벗어나도 낙오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의 어머니처럼 아이를 대할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그런 어머니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준의 무전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친절과 여유는 경제적으로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해진 지금은 오히려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준은 자살을 시도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실패는 의미가 있다. 흔히 우리가 죽을 놈이 뭔 짓을 못 해라고 하듯이 준은 그 생사의 경계를 지나오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고,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누구나 힘든 삶의 기로에서 죽음을 생각하지만 감히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한 용기다. 하지만 실패했기에 그 용기가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지 만약 죽었다면 흔적조차 없었을 것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나는 그의 자살 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는 죽으려고 했을까? 그가 걸어온 길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생으로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있고,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서 자신과 함께 하고,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안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의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나 사고의 단상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냥 젊은 시절 누구나 겪는 심한 통과의례인가? 시들해진 삶과 결코 평안하지 않았던 그의 성장기를 보면 조금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역시 충분히 납득할 수준은 아니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고, 곳곳에 그리움을 피워 올리고, 낭만이 넘쳐나는 이 소설에서 나 자신의 성장통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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