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디타운
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바치는 SF소품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레이먼드 챈들러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를 오마주한 작품들에겐 강하게 빨려 들어간다. 원작보다 아류작에 더 매력을 느끼는 나 자신의 취향이 참 특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면 뛰어난 작가들이 챈들러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이 소설도 재미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읽었다.

 

SF 하드보일드는 그렇게 흔한 작품이 아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재미는 뛰어나지만 완성도라는 측면에선 부족한 점이 많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작품이란 점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개성 강한 탐정과 그를 돕는 동료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한 설정과 전개는 이런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한 번 잡고 읽다보면 손에서 놓기 어려울 정도다. 많지 않은 분량과 빠른 전개와 간결한 구성은 더욱 그런 점을 돋보이게 한다.

 

주인공 시그문도 챈도 멀랜드리 드레이어는 탐정이다. 그는 뛰어난 사격 실력도, 격투기 실력도 없다.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 찾기다. 그런 그에게 클론이 찾아온다. 진 할로-C다. 진 할로라는 할리우드 배우의 클론이다. 이 시대는 클론과 진민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한 가족 하나의 아이 갖기라는 법에 의해 생겨난 업둥이란 비공식 존재로 이루어져 있다. 할리우드 배우들을 복제하였으니 그 외모의 매력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직업도 이런 매력적인 외모를 이용한 매춘이 주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존재는 소유주의 노예와도 같다. 이런 그녀가 시그를 찾아와 자신과 결혼하려고 한 남자를 찾아달라고 한다. 결코 정의로운 탐정이 아닌 시그는 그녀를 내좇으려고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건을 맡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세상의 상식에서 클론과 결혼하려는 남자가 등장하고, 그 사랑을 철썩 같이 믿는 클론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이 사람 찾기는 숨겨진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은 결코 쉽지 않은 임무로 이어진다.

 

세 편의 이야기 중 첫 번째가 이 사회를 이해하는 바탕 그림을 그려준다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오락적 재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너무 뛰어난 와이어라 목이 잘리고도 바로 죽지를 않거나 비공식 존재들의 우상 같은 존재로 변하게 되는 그를 보면서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조금씩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시그는 약간은 아쉽지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절정은 세 번째 이야기에서 나오는데 약간 감상적이기는 하지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아련함이 있다.

 

시그의 존재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그를 돕는 불법 행위 전문가 엘메로와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독이나 업둥이 BB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거나 주연급 조연으로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특히 BB는 시그가 좀더 인간적으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딸을 데리고 달아난 아내로 인해 점점 메말라가던 그에게 아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던 그에게 친구나 동료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나 아기들과 살면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늘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가 음식점에서 보여준 행동은 이 소설 속 많은 장면들처럼 미래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 주변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소설 이전에 작가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단지 평이 좋다는 것과 레이먼드 챈들러에게 바친 SF소품이란 문구에 혹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변했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 강한 갈증과 허기를 느낀다. 조금 읽는 책이 무겁거나 싫어지려고 할 때 펼쳐들고 빠져들기에 맞을 것 같다. 시리즈도 있다고 하니 빨리 내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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