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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인상적인 문구로 문을 연다. ‘모두가 피의 책이다. 어디를 펼치든 모두 붉다.’ 정말 그렇다. 어디를 펼쳐도 죽음과 피가 난무한다. 표제이기도 한 ‘피의 책’에서 시작된 총 9편의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놀라운 상상력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스티븐 킹의 극찬이 조금 과하다고 하여도 단편이 지닌 놀라운 재미와 구성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책의 후기에 역자는 이 선집이 두 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말한다. 현재 6권으로 출간된 ‘피의 책’은 1~3권에서 추렸고, 4~6권에서 선정한 다른 책 한 권이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의 단편들은 많은 수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헬레이져’도 그의 원작에서 비롯한다. ‘캔디맨’도 그렇다니 한때 무서움에 떨고 기발함에 놀라면서 본 공포영화의 시작이 그라니 정말 대단하다.
단편집을 볼 때면 언제나 더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여기선 ‘피의 책’과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야터링과 잭’과 ‘로헤드 렉스’다. 시작의 문을 여는 ‘피의 책’은 간결하지만 도입부로서 멋진 역할을 한 때문이고, 이번에 영화로 나온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공포의 공식에 철저히 부합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잔혹한 장면들의 멋진 묘사는 영상처럼 다가온다. ‘야터링과 잭’은 공포보다 코미디에 더 가깝다. 악마와 인간의 대결이란 고전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어리숙한 야터링과 잭의 신경전과 상황들이 무서움보다 웃음을 짓게 만든다.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기대되기도 한다. ‘로헤드 렉스’는 그 내용의 무서움보다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짧은 단편 속에 살아있기에 감탄한다. 몇 줄의 문장으로 한 인물을 살아있게 만들어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른 단편도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공모는 약간 뒤가 보이고,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은 ‘오페라의 유령’의 새로운 버전이 아닌가 생각 든다. 물론 두 이야기는 결말이 다르다. 하지만 몇 가지만 바꾼다면 어떨까? ‘언덕에, 두 도시’는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한다. 이성적으로 상상하면 불가능하지만 가상의 공간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드레드’는 공포에 대한 인간의 변화를 다루지만 공포가 마음으로 파고들기 전에 막을 내린다. 왠지 모르게 연쇄살인자의 탄생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스케이프고트’는 소설보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그 장소와 벌어지는 사건과 비밀과 전설이 음악과 더불어 긴장감을 높여줄 것 같기 때문이다.
공포가 높아지는 소설도 있고, 기발함에 감탄하는 작품도 있고, 다른 장르로 만나고 싶은 단편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각 단편의 선호도가 갈라지겠지만 거장들의 극찬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84년, 호러의 미래를 보았다고 한 스티븐 킹의 극찬이 지금 시점에서 어느 정도인지 다시 평가해 봐야할 대목이지만 킹과는 다른 묘미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예전에 나온 피의 책 시리즈를 찾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