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지도
에밀리오 칼데론 지음, 김수진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창조주의 지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작가의 창조물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서 이 지도는 다른 스릴러처럼 뺏고 빼앗는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또 이 지도를 둘러싼 긴박하면서도 엄청난 활극도 펼쳐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2차 대전 전후의 시간을 다루면서 빠른 전개와 풍부한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았다. 이유는 무얼까?

 

사실 제목이나 책 첫 장을 넘기면서 전형적인 스릴러를 예상했다. 현재의 시간에서 누군가가 죽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긴박하고 무시무시한 활극을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전개는 없었다. 약간은 평범한 한 건축학도의 삶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스페인 아카데미 도서관에 있던 한 권의 고서적으로부터 변화는 일어난다. 빈곤했던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고서적을 팔았는데 여기에 바로 창조주의 지도를 얻기 위한 단서가 담겨있는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다음이 예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예상을 뒤엎는다. 창조주의 지도는 적의 수중에 들어간다. 그러면 이야기는 끝일까? 아니다. 여기서 파생한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주인공 호세 마리아는 화자다. 그는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스파이가 된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 몬세는 파시스트인 후니오 대공과 사랑에 빠진다. 전형적인 삼각관계 구도다. 이런 관계는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최고의 미스터리다.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중요한 것은 이 세 사람의 애증과 시대의 격변기 모습이다. 대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파이가 된 주인공과 파시스트인 후니오 대공을 사랑하였지만 그의 실체에 실망을 하면서 변하는 몬세, 그리고 창조주의 지도와 파시스트 행동으로 점점 그 위세를 굳건히 하는 후니오 대공은 그 어두웠던 2차 대전의 암흑기에 상징처럼 보인다.

 

배경 전반적으로 음모론이 깔려있다. 각 세력의 스파이들이 활약하고, 음모론과 신비론은 신화와 허구로 환상을 만들어내면서 명확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단시간 벌어지는 좇고 좇기는 긴박감보다 역사의 긴 시간 속에 사람과 시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새로운 스릴러를 만들어내었다. 스파이의 활약을 2차 대전 전후의 역사와 절묘하게 조화시켜 장르소설이란 느낌을 배제하게 만들었다. 속고 속이고 숨기고 파헤치는 과정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잘 스며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놓인 한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사실과 음모는 마지막 반전으로 멋진 대미를 장식한다. 이 반전 속에 작가가 말하는 한 마디는 2차 대전 후 사회와 역사의 변명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럽은 모든 죄를 독일에 전가시켰고, 독일은 모두가 나치 탓이었다고 둘러댔으며, 나치는 또 이 모든 게 다 이미 죽고 없는 히틀러 탓이라고 말 할 뿐……”(412쪽) 자기반성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보다 남 탓으로 그 비극을 벗어나려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일침은 단순한 스릴러와 역사의 만남을 뛰어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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