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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미네이티드
매트 브론리위 지음, 정영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팩션이다. '다빈치 코드‘ 이후 정말 많은 팩션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오락적인 요소나 속도감 등을 따져서 그것을 능가하는 재미나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다.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빠르게 읽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속도감 속에 구텐베르크 성서를 둘러싼 비밀이 충격적이거나 놀라움을 주지 못한다. 앞으로도 ’다빈치 코드‘를 능가하는 팩션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판단이다.
구텐베르크란 이름은 그냥 우리에겐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 사람일 뿐이다. 오세영 씨의 ‘구텐베르크의 조선’이란 소설에선 그의 존재가 너무 힘없이 그려져 그 의미가 축소되어 있다. 이 소설에선 직접 그가 등장하는 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가 인쇄한 성경의 비밀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여기엔 또 비밀결사가 등장하고, 음모와 거대한 조직의 힘이 드러나면서 주인공과 그 가족을 괴롭힌다. 근데 너무 그 조직이 곳곳에 자리 잡고 당연한 듯 위력을 행사하는 부분에선 조금 눈에 거슬린다. 그 비밀결사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여도 너무 작위적인 등장과 연결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요소 중 하나다.
고아파와 용의기사단의 구텐베르크 성서에 실린 비밀을 둘러싼 대결이다. 작가는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과 도서관이나 주택이란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단 몇 시간을 중심으로 긴박하게 진행한다. 비행기와 도서관에선 이혼한 부부가 집에 남겨진 아들의 안위를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해나간다. 비행기 속 오거스트는 희귀본 거래로 삶을 이어가는 전직 고대성서학자다. 그의 아내였던 에이프릴은 또 다른 구텐베르크 성서가 있는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다. 이 이혼한 부부가 구텐베르크 성서의 비밀을 푸는데 최상의 선택인 것은 당연하다. 작가는 이 부부의 현재를 빠르고 긴박하게 몰아가면서 그들의 아들인 찰리의 위기도 같이 보여준다. 갇힌 공간에 있는 오거스트는 탁월한 지식으로 채식장식을 통해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지만 긴장감을 심어주지 못한다. 악당에게 쫓기는 에이프릴도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에 찰리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으로 약간은 활력이 부족한 듯한 이 소설에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음모와 비밀결사를 다룬 소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실수는 그 조직을 너무 거대하게 잡거나 어디에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것이다. 처음엔 이런 상황이 긴장감을 고조시켜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라는 반감을 불러온다. 이 소설도 너무 쉽게 FBI 속에 자라잡고 활동하는 요원을 보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리고 엄청난 가치를 가진 고서가 사라졌는데도 사회적 반응이 없다거나 고아파의 힘없는 대응은 그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위험하게 행동해야할 오거스트 가족의 위치를 애매하게 만든다. 특히 너무 빨리 포기한 듯한 장면에선 힘이 빠졌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가 하고. 그래서인지 채식장식에 담긴 비밀도 흥미를 잃게 된다. 하지만 빠르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글과 간결한 문장은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