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31살의 패션잡지 피처 팀 고참 사원의 이야기가 이렇게 쏙 눈에 들어올지는 몰랐다. 첫 느낌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연상시켰다. 작가는 첫 부분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는 간단하게 무시하고 지나간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와 상황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한 점은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고가품에 환장을 한다. 차이라면 미국에선 공짜로 협찬 받는 반면 한국에선 자신들의 월급으로 사야한다는 정도. 그래서 밥을 굶어도 자신이 사고 싶은 고가의 신발과 백에 대한 욕망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주변에 패션 디자이너가 있어 그들이 얼마나 옷과 신발과 백에 신경을 쓰는지 안다. 나 같이 패션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정말 한심해 보이지만 그들에겐 삶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엔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사실 몰랐다. 166센티에 56킬로그램이면 정상적이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동네에선 뚱녀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나가면 직업의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뒤에서 욕을 한다. 다이어트는 생활의 필수고, 고가품은 당연한 일상품이다. 비록 그들의 은행 계정이 마이너스를 달고 있다고 하여도.

 

작가 이력을 보면서 이 책 내용에 담긴 이야기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단박에 알게 된다. 실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간결하고 경쾌한 문장으로 멋지게 만들어낸 것이다. 주인공 이서정은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욕하는 사람들을 서서히 닮아가고 있다. 나쁜 성격보다 일하는 시간이나 방식을 말한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가? 새벽 2시 반에 전화를 하고, 3시에 문자를 보내자마자 5초 만에 답장이 온다고. 만약 어쩌다 특별한 일이라면 이해를 한다. 이런 일이 그녀의 삶에선 일상적이다. 일과 다이어트에 대한 욕망은 어쩌면 그 바쁜 일상에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아마도 보조제라고 해야 할까?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다보니 속도감이 상당하다. 일인칭이기 때문보다 작가의 역량 때문이지만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녀의 직업과 연관되면서 색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충족시켜준다. 스타 한 명을 인터뷰하기 위해 1년 동안 공을 들이고, 쌓여가는 무료 쿠폰이 있지만 이용할 시간이 없는 삶은 분명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한 명만 있다면 생각보다 이해하기 쉽다. 내 주변에도 비싼 무료 티켓을 그냥 시간이 없어서, 혹은 잊고 지나가 버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또 힘을 가진 매체가 유명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매체가 인터뷰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도 알고 있다. 물론 힘 있는 매체도 인터뷰하기 힘든 인물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서정 중심의 이야기다. 그녀의 직업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직업이 낯선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고, 환상을 깨트리고,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넘쳐나는지 알려준다면 사랑은 순정만화의 통속성을 따라간다. 일 중독자의 일상에서 속내를 솔직하게 토해내면서 일과 인간관계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는 약간 진부한 면이 있다. 여기서 조금 힘이 떨어진다. 재미는 변함없지만 삼순이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다.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대부분 여자들의 욕망을 잘 표현한 한 문장은 바로 55에서 44 사이즈로 변하는 마법이 있다면 파우스트 박사에게 영혼조차 팔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점점 말라가는 체형과 길에 범람하는 날씬한 여자들의 모습은 보기엔 좋지만 그들의 삶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이서정은 유쾌하고 경쾌하게 보여준다. 또 음식 평론을 하는 닥터 레스토랑의 비평은 맛보다 멋, 맛보다 이름에 치중하는 우리를 대변한다. 이것을 조금 더 확대해석하면 고가품 구두나 옷이나 백에도 적용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현실과 비평은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과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욕망은 언제나 이성의 벽을 넘어 우리를 이기는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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