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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아이 ㅣ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을 읽으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여기에 실린 동화들 중 많은 이야기를 이전에 읽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여전히 재미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읽었는데 그 당시 작가는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그의 동화집이 아니 다른 동화모음으로 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한때 전 세계 동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쁜 습관과 나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나쁜 습관은 나쁜 기억력과 함께 움직이는데 특히 작가나 제목 등을 외우는 상황에 부딪히면 더욱 심하다. 제목만으로 그 소설을 읽었는지 알지 못하고, 어지간히 재미있게 읽은 소설도 작가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많은 작품이 출간된 작가라면 자연스럽게 이름을 외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기억 못할 때가 더 많다. 혹은 작가와 작품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따로 놀기도 한다.
총 9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두 권으로 출간된 단편집을 한 권으로 펭귄클래식에서 묶었다. 각각의 이야기가 교훈적이면서 비판적이고, 감정을 잘 살려내었다. ‘행복한 왕자’에서 시작하여 ‘별에서 온 아이’로 이어지는 이 소설들이 대단히 마음에 든다. 어린 시절 그냥 읽고 지나간 대목이 새롭게 다가오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텍스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소위 좋은 작품은 여러 번 읽으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하는데 그런 경향이 무척 강하다.
이 소설들 중 몇 편의 마지막은 상당히 냉소적이거나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공주의 생일’의 마지막 대사와 ‘별에서 온 아이’의 마지막 문장은 아름다운 동화라는 환상을 그대로 깨트린다. 다른 작품에서 아름답고 위트 가득한 진행이 여기선 놀라운 마무리로 반전처럼 툭 불거져 나온다. 앞에 진행되었던 교훈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갑자기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항상 단편집을 읽을 때면 더욱 좋아하는 작품이 생긴다. 여기서는 ‘행복한 왕자’와 ‘어부와 그의 영혼’이다. 확실히 이전에 읽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왕자’는 역설적인 이름처럼 아름다운 동상인 왕자와 제비의 우정이 가슴을 찡하게 울리고, ‘어부와 그의 영혼’은 사랑과 영혼이란 두 존재를 이렇게도 다룰 수가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풍부하게 가지를 뻗어나간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이 두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작품들이 재미없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강한 인상을 주었다는 의미다.
생각한 것보다 재미있었고 빠르게 읽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로 인식하던 그를 이젠 이 단편선으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해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을 더해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생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동화 세계의 그리움과 즐거움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