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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두려운 메디컬 스캔들 - 젊은 의사가 고백하는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박정아 옮김 / 알마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환자만 없었다면 의학은 훌륭한 학문이었을지도 몰라.” 한 의사가 이 말을 하였다. 논리적으로 따진다며 맞다. 하지만 의사가 할 말은 아니다. 이 말엔 현재 의학이 가진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환자를 위하기보다 돈을 위하고, 현실에 필요한 연구보다 돈이 되는 연구만 하는 의학과 환자와 부딪히며 함께 호흡하기보다 실험실에서 실험에 집중하길 원하는 의사들의 비뚤어진 바람이 담겨있다. 단지 한 의사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감이 점점 높아지는 현실에서 그 의사만 그렇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메디컬 스캔들이라니 얼마나 자극적인가. 저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것과 동료의사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그 사실 하나 하나가 놀랍다. 물론 많은 사례들을 이미 여기저기에서 보았기에 충격은 덜 하지만 그래도 독일이란 곳이 이렇다는 점에선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한국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다. 매체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갑자기 현실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모두 11장이다. 각 장마다 다루고 있는 내용이 우리나라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진료시간이 무척이나 짧은 점이나 환자를 길들이는 풍토나 환자의 인격에 무관심하거나 환자들에게 서열을 매기는 것이나 환자를 거부하는 병원 등등이 너무나도 닮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시 한국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몇 번이나 의심하였다. 특히 독일에서 두 가지 보험제도가 있다고 한 부분과 이 다른 두 보험제도 때문에 환자가 어떻게 차별 받고 다루어지는지를 보면서 현 정부가 바꾸고자 하는 의료보험제도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비싼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환자는 예약도 힘들고, 병이 났을 경우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할 수 있으니 흔히 하는 농담처럼 아프지를 말거나 그냥 빨리 죽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금 과격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병에 걸리면 개인과 가족, 가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의미다.
병원과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환자가 없다면 의사도 병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은 의사와 병원이 환자 위에 군림한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환자의 생사를 다루다보니 환자들은 그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의사는 굉장히 권위적으로 변한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에 간 몇 곳의 의사는 나름대로 친절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환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은 잘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의사가 병원에서 높은 지위로 가는 방법이 환자를 많이 보고 치료 경험이 풍부한 사람보다 논문 실적이나 실험 경력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다는 점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논문을 많이 쓴 것은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있던 나에게 의사란 환자를 돌보는 사람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실험실에서 열심히 연구하거나 논문 실적이 풍부한 의사를 매도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의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 더 많고, 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감으로써 환자들이 좀더 편안하게 진료나 치료를 받게 하자는 의도다.
나 자신도 자주 말실수를 한다. 무심코 하거나 그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안다. 근데 만약 환자들에게 의사가 이런 한마디를 던지면 어떻게 될까? 전문지식과 권위로 무장한 그들의 한마디는 내가 무심코 뱉은 말과는 분명히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병원과 의사의 성벽을 허물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충분하지 않았던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목처럼 메디컬 스캔들이라 읽기 두려운 것이 아니고, 읽고 난 후 너무나도 우리와 비슷한 현실과 다가올 미래 때문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