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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친구들의 도쿄 표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변함없이 즐겁다. 먼저 번역된 <와세다 1.5평 청춘기>에서 작가 특유의 삶과 시선이 즐거움을 주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일본 출간 순서를 보면 이 책이 먼저고 서점 대상작인 <와세다 1.5평 청춘기>가 뒤지만 한국에선 반대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번역본에서 본 재미난 장면들이 나와 반갑기도 했다. 그렇지만 두 책은 완전히 다른 배경과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와세다 1.5평 청춘기>가 좁은 방을 배경으로 벌어진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이 책은 도쿄에 온 외국인을 만난 작가의 TOKYO 이야기다.
왜 도쿄가 아닌 TOKYO라고 표기했는가 하면 그가 외국인과 도쿄를 다니면서 느낀 감정이 내국인의 시선이 아닌 외국인처럼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장면이다. 내가 안내자가 되어 낯선 이방인을 안내하게 되면 이런 감각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조금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안내하기 위해선 평소엔 그냥 스쳐지나간 것도 유심하게 쳐다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이나 낯선 도시에 가서 원하는 장소를 찾기 위해 열심히 간판과 도로 지도를 보는 것처럼.
8명의 외국인을 말하고 있다. 각각 다른 나라에서 왔고, 다른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일본에 대해 일반적인 외국인의 모범 답안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다. 잠시 스쳐지나 가는 외국관광객이 아닌 장시간 체류한 외국인이 대다수이고, 작가 자신이 일반 일본인이 아니어서 신선하고 새로운 일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작가의 유별나고 특이한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는 나는 즐겁다. 일본 도쿄 태생 화자가 도쿄를 TOKYO처럼 이야기하니 재미날 수밖에.
많은 이야기 중에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둘 있다. 먼저 실비아와 관련된 첫 번째 이야기다. 그녀와 함께 사는 외국인들이 일본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모두 입을 모아 대학을 나와도 못한다고 규탄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뜨끔하다. 근데 재미난 것은 그들 나라 사람들도 영어를 못한다는 것과 그들이 일본에 온 지가 몇 년이 되었는데 아직 일본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프랑스 아가씨 실비아도 학교 졸업 당시는 영어를 못했다고 한다. 또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국에 대해 영어를 못한다는 말을 봇물처럼 쏟아내는 장면이 있다. 외국어가 절실하게 필요한 나라 몇 곳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에 몇 년을 머물면서 일본어를 못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게 한다.
다른 하나의 에피소드는 콩고의 동가라 아저씨 이야기다. 일본 유적을 보러간 동가라 아저씨가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자 자국어로 말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가 프랑스 식민지로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고, 과거의 유물이 하나도 없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찡했다. 과거 식민지 수탈과 파괴가 한 나라의 과거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절실히 보여준다. 한국이 일제시대 전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유적과 유물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는지, 해방 후 미신과 근대화란 이름으로 수많은 문화가 사라졌는지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맹인 마후디나 대부호의 풍체를 가진 이라크인 알리나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돈을 벌려고 한 페루인 우에키나 다렌에서 온 도라에몽 같은 중국인 루다후도 즐거움을 주었다. 좋아하는 여자를 붙잡고 아마존을 탐험하기 위해 배운 스페인어 강사와의 몇 가지 에피소드는 각 나라의 특징이 잘 묻어난다. 부유한 콩고 대사관 아들의 여유로운 삶과 대비되는 대사관의 궁핍함은 묘하게 대비되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전혀 일상적이지도 일반적이지도 않은 그가 보여주는 TOKYO의 이야기는 웃음과 신선함으로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