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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게바라와 관련된 책으론 세 번째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번역된 책이 처음이고, 그 다음이 시집이었다. 가장 유명했던 평전은 사놓고 어디에 있는지 몰라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이 글들에서 만나는 체는 아직도 나에게 그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의 평인 “우리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었다.”가 가슴에 진한 감동과 울림을 주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체 게바라. 그는 이제 이 시대의 문화 아이콘이다. 그의 혁명정신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단지 유행하니까 그의 평전을 읽고 있다. 내가 이 시대 사람들을 너무 폄하하는 것일까? 그의 얼굴과 이름이 상업화에 이용되면서 그의 정신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 시대의 현실은 아득한 옛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가 누군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은 체가 걱정했던 현실에서 유일한 희망이다.
체 게바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기에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평하는 것은 어렵다. 감정이입 되거나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면 흥미롭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그런 감정이 많이 배제되어있다. 그의 두 번째 아내가 지나간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다. 추억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체의 모습을 문자로 재현하였는데 사실 조금은 건조한 느낌이다. 그리움과 사랑이 곳곳에 배어있지만 사실들 나열과 간결한 이야기들이 그 감성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다. 또 번역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여 깊은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이런 느낌이 더 강해지는 듯하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일화와 사진들은 자료로써 충분히 매력 있다. 풍부한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은 체 게바라의 다른 모습을 보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역시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회고록 전체를 간통하는 흐름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과 그리움과 그의 정신이 흐른다고 할 수 있지만 가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알레이다의 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번역 문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좋지 못한 몸 상태 때문일까?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약간 삐딱한 시각으로 그의 행적을 볼 수도 있지만 그의 긴 행보를 보면 사르트르의 평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다. 쿠바에서 최정상에 올라 선 그가 보장된 지위를 벗어나 그 힘든 게릴라 삶으로 복귀했다는 것은 숨겨진 이면을 감안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체에 대한 회상이 담겨있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부인이자 동지였던 알레이다의 회고록이다. 어떻게 그녀가 혁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그와 만나고 산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또 곳곳에 드러나는 쿠바에 대한 애정과 혁명정신 찬양은 예전에 읽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책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체 게바라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던 책은 역시 시집이다. 물론 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시들과 감성이 그의 다른 모습을 보게 하지만 시집에 실린 그의 정신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매력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알레이다의 시선이다. 약간 도식적인 부분들도 눈에 들어오지만 시들의 함축적인 의미들이 이 속에선 자세히 풀어지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그는 알수록 더욱 빠져드는 인물이다. 빨리 평전을 찾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