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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안 데 파레하 - 신분을 초월한 사제지간의 우정과 예술이야기
엘리자베스 보튼 데 트레비뇨 지음, 김우창 옮김 / 다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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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후안 데 파레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알고 있다. 이전에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소재로 한 스릴러를 읽은 적이 있고, 다른 책에서 이 이름을 자주 보았기에 상당히 익숙하다. 또 그의 유명한 걸작 <궁정의 시녀들>은 아주 낯익은 작품이다. 작품과 화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만 역시 그 세부적인 내용은 몰랐는데 이 소설을 통해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1965년 출간 작이다. 소설은 스페인의 명화가 벨라스케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야기의 화자는 그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다. 후안의 어린 노예생활에서 시작하여 벨라스케스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반에 후안이 벨라스케스에게 오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며 그 시대의 단면을 그려낸다. 노예지만 좋은 주인을 만나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던 그가 전염병으로 주인을 잃고 벨라스케스에게로 이전되는 그 과정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보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낯익은 풍경이다.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
좋은 주인을 만나 문자를 배우고, 옛 주인이 죽음으로써 새로운 주인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게 되는 후안은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행운아다. 그 자신의 노력도 많았지만 조용하고 인정 많은 벨라스케스와의 만남은 그가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화가로 성장하게 된 것은 뛰어난 명화가의 노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면 그의 노력도 대단하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벨라스케스의 예술관과 인물에 대한 평까지 함께 보여준다.
소설은 재미있다. 쉬운 문장과 섬세한 진행은 부드럽게 읽힌다. 예전에 읽은 몇 권의 책 덕분에 소설 속에 묘사된 몇 장면은 익숙하고 옛 기억을 떠올려준다. 이전 책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새롭게 해석하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끌고 갔다면 이 소설에선 상상력이 조금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사실들 사이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두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 가득한 노예와 그 열정을 알지만 시대의 제약 때문에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는 화가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과 화가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후안의 노력과 도전은 시대의 벽을 뛰어넘는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벨라스케스의 삶과 그 시대의 풍경은 후안의 노력과 함께 또 다른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