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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일기 - 최인호 선답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 최인호는 내가 그렇게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다.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은 나오는 책 모두를 찾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예상외로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그 위력을 발휘하는 작가이기에 베스트셀러를 나몰라 하는 성격이 아닌 나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을 때면 재미를 많이 느끼는데 이번 산문집은 재미보다 인생의 깊이를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선답 에세이라는 글이 붙어있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 천주교 신자로 생각하였기에 얼핏 불가에 대한 글을 쓴 책이라기에 의아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착각을 알게 되었고, 풍부한 삶의 경험과 깨달음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아직 날이 바짝 선 나에 비해 그가 보여준 유연성과 깊은 이해와 관용의 폭은 살아온 세월의 차이가 아닌 사물을 대하는 기본자세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책 속 글들은 대부분 자신에서 시작하여 자신으로 돌아온다. 가족이나 친구나 스님들 이야기도 나오지만 결국은 자신으로 돌아와서 마무리한다. 그 마무리가 어느 순간은 무척 짧고, 어느 순간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일상과 욕망과 해탈에 대해 쓴 세 꼭지 마흔 다섯 편의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분량만 놓고 본다면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지만 아직은 욕망에 휩싸여 살기에 욕망에 대한 글에서 더 많은 공감을 한다.
수많은 이야기에서 수많은 느낌을 받았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글들도 많았는데 특히 심 봉사 이야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공양미 삼백 석에 눈을 떠야하는 심 봉사가 심청이를 만나는 순간 눈을 뜬 이유가 현재를 사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기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가족으로 되돌아오지만 나의 생각은 간절히 소망하고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나를 덥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의 한 자락을 보게 한다. 지금도 나 자신은 심 봉사처럼 앞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한다.
최인호 씨의 글이 문장으로, 이야기로 즐거움을 준다면 사진가 백종하 씨는 한 장의 사진으로 깊은 여운과 감동을 준다. 빛과 그림자,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그 사진은 작가가 말하는 찰나의 깨달음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끔 사진과 책 내용이 함께 하지 않음으로써 상승효과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작업은 일상의 순간에서 그냥 보고 지나온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사고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포착하고 독자들에게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여유로운 삶의 순간과 여운을 전해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