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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마르틴 우르반 지음, 김현정 옮김 / 도솔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무엇인가를 믿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본다면 삶은 무척이나 피곤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생활에 활력과 속도를 높여주는 윤활유와도 같다. 물론 이것이 신앙으로 들어가면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믿음은 불안과 공포나 의문 등에 대한 방패로 작용한다.
저자는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고대 생존을 위해 사람들이 해석능력을 발전시킨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겉모습 변화를 시도한 반면에 인류는 두뇌를 발전시켜왔다. 뇌에 대한 이야기는 영혼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고, 이런 해석능력의 발전은 무의식이란 거대한 바다로 스며들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재인식하고 재해석하며 진화해 왔기 때문에 우린 왜? 라는 의문을 던지는 생명체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우연이다. 하나의 사례로 어떤 남자가 탑승완료 몇 분 전에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라는 영감을 받아서 비행기 추락에서 살아남았다면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준 신에게 감사할 것이고 말한다. 단순히 통계수치로 보면 우연이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유의미한 우연”이다. 자신이 살아난 것에 대해 감사하지만 다른 수백 명의 탑승객들이 죽은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보호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란 의미일까? 이런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 사고는 우리 실생활에서 자주 보이는 일이다. 우리가 점쟁이에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언을 들으면 늘 일어나는 일도 그 예언의 실행이란 믿음에 빠져든다. 종교에서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많은 부분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저자 자신이 독일인이고 자란 문화가 기독교권이기 때문이다. 책 중반으로 가면서 종교가 어떻게 생겨나고, 권력과 위계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불신보다 믿음이 더 위험한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긴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성이다. 하지만 종교인에게 이성은 언제나 신앙의 하위 개념이다. 그들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질문을 던지면 하는 말은 언제나 동일하다. 믿음이 부족하다니 이성을 초월한 신앙을 말한다. 오랜 역사에 걸쳐 편집된 책이 성경이란 사실도 그들에겐 중요하지도 믿을 것도 되지 못한다. 점점 근본주의로 돌아가는 종교의 모습은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데도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현대 교회가 현대적이지 못한 이유도 이런 신앙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신교가 구교의 교리해석이나 권위적인 로마 카톨릭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였지만 그들 또한 하나의 틀 속에 갇혀있음을 지적한 대목에선 아쉬움을 느낀다.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자가 득세하는 현실은 이라크 사태를 넘어 우리를 불안으로 밀어 넣고 있다. 믿음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믿음에 매몰되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그 믿음은 엄청난 화를 가져온다. 저자가 믿음과 이성의 조화를 외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이나 자연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들이 신이란 존재를 만들어내었다고 학자들은 주장하지만 신자들에겐 통하는 주제가 아니다. 저자가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이 책 속에서 풀어내면서 이성과 믿음의 조화를 외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냥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생물학, 심리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인용하며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을 해석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이나 머릿속 이성의 작용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의 이성도 점점 굳어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