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아이라 재판소동
데브라 하멜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과거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남겨져 있을 경우 우리는 그 시대를 비교적 잘 알 수 있거나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료가 충분하지 않거나 긴 세월이 지난 경우 자료도 부족할 뿐 아니라 자료만으로 그 시대를 추론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명의 창녀 네아이라를 중심으로 한 재판으로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생활상을 돌아보는데 분명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다.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으로도 우린 불과 수 백 년 전 조선시대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부터 무려 2500년 전 아테네 사회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역사는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작업임을 상기한다면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분명히 새로운 재미를 준다. 비록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이름이 복잡하고 읽기 힘들다 하더라도.

 

그리스 시대의 기록 중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많지 않은 것 중에서 저자가 네아이라 재판을 선택하여 글을 쓴 것은 이 재판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잘 나타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아폴로도르스의 연설문이 있기에 탄생했지만 저자는 연설문에만 기대지 않고 그 시대와 관련된 역사나 다른 연설문 등을 통해 그 사회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한 면을 대변하는 창녀 네아이라를 보며 여성의 지위와 가부장 구조를 알게 되고,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통해 그 시대의 소송제도와 배심원 제도를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재판의 목적이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연설문이 너무 엉성하다는 점이다. 현대 법정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그 허점투성이와 연관성이 부족한 논조에 웃음이 나올 정도다. 증거는 부족하고 논리나 정합성보다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데 더 중심을 두는 듯하다. 노예를 고문해서 얻은 정보를 더 정확한 것으로 여겼다는 대목이나 간통자를 고문하는 방법으로 남자의 항문에 무를 넣었다는 사실에선 인권을 열외로 하고라도 우리 시대와 얼마나 다른 사회였는지 알게 한다. 또 도시국가였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아테네 시민권을 유지하기 위한 법률이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현실은 이 재판의 핵심이자 공격의 대상이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그녀가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으로 바뀌면서 이 재판의 피고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의 뛰어난 창녀였다가 두 남자에게 팔린 후 시간이 지나 자유인으로 그녀는 변한다. 그녀 삶이 간결하게 설명되지만 저자는 감정을 싣기보다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술한다. 개인사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녀를 통해 그 사회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인 부분이다. 냉정하게 그 시대를 그려낸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활기차거나 감정 이입될 인물이 등장하지 않다보니 약간 늘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렇다 하여도 이 한 권으로 아테네 사회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주니 고대 그리스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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