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안토니오 스쿠라티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한 학생이 총을 들고 시험장에 있던 선생들을 쏘았다. 그곳에 살아남은 자는 단 한 명이다. 그가 역사, 철학 선생인 안드레아다. 그 과정을 작가는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가장 놀란 것은 총을 쏘는 학생이 아니라 총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진 선생들이다. 그 자리에 얼어붙고 기어서 도망가고 기절한 그들을 보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반격을 생각했다. 현실은 다르겠지만 선생들의 반응은 뒤이어 나오는 안드레아의 사유와 맞물리면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책은 생각보다 힘겹게 읽혔다. 물론 책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다. 개인적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고, 상황에 대한 서술보다 역사적이고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엄청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반응과 분석들이 하나의 축으로 흘러간다면 다른 한 축은 그 사건의 원인을 찾는 안드레아 선생의 긴 추적이다. 이 긴 여행 속에서 작가는 학교 제도와 교사들의 자세와 학생들이란 존재를 해부하고, 현재 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고찰한다. 가끔 그 논조가 과격하여 주춤하지만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동료 교사 7명이 죽은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드레아에게 한 기자가 묻는다. “어떻게 생존자가 되셨습니까?” 이 표현 속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영원히 고정되었다. 이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그 학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그를 올려본다. 엄청난 현실에 대한 공포가 그를 숭배의 대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 생존자 안드레아는 자신에게 닥친 그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고, 학살자인 비탈리아노가 잡히지 않길 바란다. 왜 선생들을 죽였을까? 그리고 왜 자신은 죽이지 않았을까? 이 의문들이 끊임없이 부딪혀 온다.

 

비탈리아노는 키 크고 멋있고 잘 생겼다. 그는 열 살 때 우상으로 여기고, 스무 살에 그와 같이 되고 싶거나 아니면 그의 패거리가 되고 싶어 하고, 마흔 살엔 일에 몰두하여 잊어버리려고 하고, 쉰 살에는 자기 딸이 그를 만날까 가두어 두려고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쁘지도 않다. 바로 여기 이 소설이 지닌 어려움과 재미가 드러난다. 왜? 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학교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사유들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가 마약을 하고 낙제한 학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왜 그런 참극을 일으키고 그는 사라졌을까? 만약 우리나라도 학생들이 총기를 소지하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참극 이후 수많은 전문가와 기자들이 시간의 제한 없이 수사를 연장하지만 진실의 온전한 모습은 무시한 채 진실의 단편들만 수집한다. 그들의 시선은 자신의 입장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에 안드레아는 자신의 과거 기록을 통해 그 이유를 뒤쫓는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현실은 더욱 힘들다. 기록과 기억의 숲에서 단서들을 찾지만 명확한 실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도달한 역사적 사실은 집단 학살의 기록이다. 전 세계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집단 학살의 기록과 그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때 안드레아는 국가졸업시험의 구술시험에서 그 문제를 자유 주제로 다루어 보라고 한다. 그 참극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일까?

 

작가는 “전 세계의 학교화는 혁명적인 사상을 통제하고 대중사회에 뿌리 내린 저항의 기운을 제어하기 위한 도구로 19세기 후반에 착상되었다.”(407쪽)고 말한다. 교육은 좋은 기능이 많지만 분명히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능이 가장 쎄다. 교사들은 이제 스승에서 직업 노동자로 변하고, 변화하는 세대를 제대로 좇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단과 현실의 간극을 생각하고, 현실의 무시무시함을 들여다보면 이 비극적 행동은 하나의 에피소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린 쉽게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우리가 알고 배우고 익힌 이데올로기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한 번으로 충분히 그 재미를 만끽하기엔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시간 내어 다시 그 문장과 사건과 이유를 곱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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