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해석 - 프로이트 최후의 2년
마크 에드문슨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원제를 보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이다. 근데 제목은 광기의 해석이다. 왜 일까? 그 이유는 프로이트 죽기 2년 동안 유럽에 몰아친 나치를 비롯한 파시스트들의 광기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그 광기의 시대가.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빈과 런던 두 곳으로 대변되는 시간이다. 빈의 시간이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손에 넘어가는 과정과 결말에서 부딪히는 프로이트와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삶을 다룬다면 런던은 그가 어쩔 수 없이 도망 온 장소이자 마지막을 맞이한 곳이다. 이 두 장소를 배경과 시간 속에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급격하게 변하는 유럽의 정세를 풀어내고 있다.

 

시작은 1909년 빈이다. 이 시기에 빈은 역사에 남을 두 사람이 함께 거주한다. 프로이트와 히틀러다. 이 둘이 어딘가에서 만났느냐 하면 아니다. 다만 그 시기에 같은 테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근데 왜 저자는 이 우연의 시기로 시작할까? 한참 최고를 향해 가고 있던 프로이트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쥐 떼 중 한 마리’(14쪽)였을 히틀러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프로이트 최후의 2년에 벌어질 다양하고 무시무시한 현실에 담겨있다.

 

1938년 오스트리아 빈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히틀러의 협박과 나치의 대두는 광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협박으로 국민투표를 연기시키고, 두 나라를 하나로 합병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나치의 구호가 “단일 국민, 단일 국가, 단일 지도자!”이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죽음을!”

 

가부장제를 해체하고자 한 가부장적 권위자인 프로이트의 말년을 보는 것이 즐겁지는 않다. 암으로 고생하고, 날뛰는 나치 때문에 고생하는 그를 보면 안타깝다. 자신이 최후를 마치길 원하는 고국에서 도망 와 비록 자신이 얻고자 했던 명성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마지막까지 평화를 원했던 마음은 무너진다. 그 말년에 저술한 ‘모세와 일신교’가 자신이 원하는 반향을 일으키기는 하였지만 세계를 휩쓸고 있던 광기를 잠재우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온 두 비교가 있다. 하나는 나치의 독재주의와 미국의 물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파시즘과 근본주의에 대한 경고다. 독일이 광적인 독재국가인 반면, 미국은 모든 것이 철저하게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위협적인 주장을 하는 나라다는 점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지막에 가서 파시스트와 근본주의자가 철저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경고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파시즘이 “내면의 투쟁을 사라지게 하고, 사람들에게 강력하고 힘센 느낌을 갖게 한다.”(277쪽)고 말하며 그 위험과 중독성을 경고한다. 현재 세계 유일한 최강국이자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면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점점 자라는 미국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하기에 더욱 시선이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광기에 대한 섬뜩했던 내용은 놀라운 득표율이다. 오스트리아의 독일 합병에 대한 선거인 찬성이 99.73%이고, 독일이 90.2%라는 점이다. 이 이면에 다른 어떤 사실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찬성률은 뒤에 다가올 광기와 폭력의 서막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찬성률은 우리의 두 지역에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자신들이 강력하고 힘센 느낌을 가지는 듯한 환상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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