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마릴린 먼로는 죽음으로 불멸을 얻었다. 당대 최고 섹시미를 자랑하던 그녀가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시간 속에 고정시켰다. 그와 비견되는 반항아 이미지의 제임스 딘을 생각하면 젊은 시절 세계적인 배우들의 죽음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소설은 쉽지 않다. 장면 장면만 놓고 본다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좇다보면 마릴린의 삶에 힘겨움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대중의 시선과 관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힘겹게란 표현이 약간 사치스럽게 느껴지지만 끊임없이 정신 상담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는 그녀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화려한 은막 뒤에 숨겨진 삶은 호사가들의 입방아나 추종자의 숭배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넘어선 곳에 있다. 그 깊고 어둡고 힘겹고 외로운 삶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작가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면서 그 과정에 허구를 끼워 넣는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알지 못하지만 화려했던 삶 이면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하다. 마릴린 먼로와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의 랠프 그린슨의 사랑을 그렸다고 한다. 그 사랑이 섹시하지만 쉬운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던 것과는 달리 정신적이란 점에 주목을 하고, 그 관계가 가족을 연상한다는 점에서 놀랍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기 원했지만 자신을 모방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순에 빠진 그녀가 정신 상담을 받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세계를 휩쓸고,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정신 상담으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 시대였다.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그 전설은 영화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가차 없이 자신을 파헤치고 뒤집는 현실에서 연약했던 그녀가 신경질환으로 고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불안하고 고민하고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정신 상담과 수많은 약들은 그녀를 치료하기보단 일시적인 안정이나 의존적 관계로 이끌고 가면서 불안을 더 심화시킨다. 정신분석의 한계라는 표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방대한 자료와 하나의 시간 흐름과 다양하게 오고가는 공간과 시간으로 복잡하고 단숨에 읽기 힘들다. 곳곳에 드러나는 5-60년대 영화계 이야기가 재미와 웃음을 주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싸우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타락했는지 보여준다. 그 매혹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난 인물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은 들었을 것이고 존경해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 이렇게 파헤쳐지니 신비감과 존경심은 많이 사라진다. 

 

소설 속에 재미있는 글이 있다. 마릴린이 녹음한 것인데 “가끔 전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이용하는 것이 지식도 아니고, 자가치료법도 아니고, 바로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자신의 상처라는 생각을 해요.”(410쪽)라는 대목이다. 프로이트의 글을 성서처럼 숭배하고, 랠프 박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던 그녀가 삶 속에서 본 것이 이 말처럼 자신의 상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15시간을 자는 사람을 질투하고 욕하는 그녀가 불면에 시달리고, 전화기를 끼고 밤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약을 먹어야 잠들었던 그녀를 생각하면 연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릴린 먼로에 자신이 자꾸 복제하는 모순에 빠졌다는 말처럼 자신을 상실하거나 자신을 마주하길 거부한 듯하다.

 

사랑이야기라고 하지만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그 둘의 관계는 환자와 의사의 수준을 넘었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랠프 박사가 마릴린에게 육체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대목에선 세계 최고의 섹스 심벌이란 말이 무색하고, 만약 프로이트가 마릴린을 정신 상담했다면 침대에 눕혔을 것이라는 대목에선 웃음이 나왔다. 화려하게 물들인 금발을 숨기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도로에서 그녀에게 “마릴린 먼로라도 되나”라고 한 운전수가 말하는 장면에선 화려한 명성과 이미지에 의한 상징성과 대비되는 삶의 한 측면을 보게 된다.

 

과연 그녀는 자살했을까? 아니면 타살일까? 소설은 이 의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 만나는 마릴린의 삶은 자살이라고 해도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힘겹다. 엄청나게 먹은 약물과 술은 삶을 바닥으로 내몰고 있고, 자신을 잃고 있다는 느낌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남녀관계는 충분히 타살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세계 최고 권력자나 마피아와의 관계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사실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주었고, 어두운 삶에 확실한 죽음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녀가 죽었고, 많은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고라출판사 2008-04-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마릴린, 그녀의 마지막 정신상담>을 출간한 도서출판 아고라입니다. 저희 책을 읽고, 좋은 서평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인01님께서 써주신 이 서평이 저희 아고라 독자위원회가 뽑은 '3월의 베스트 리뷰'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뜻으로 도서상품권 1매와 저희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 1권을 선물해드리려 합니다. editor@agorabook.co.kr로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선물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