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언 매큐언의 소설로는 세 번째로 읽는다. 단편은 처음이다. 역시 마음에 든다. 전작들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 설정과 전개와 마무리는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읽는 재미를 준다. 총 8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 한 편 한 편이 개성적이고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물론 그 강도가 똑 같지는 않다.

 

유쾌하게 읽은 소설로는 ‘입체기하학’과 ‘극장의 코커 씨’다. 섬뜩함을 느낀 것은 ‘가정처방’과 ‘나비’였고, 아픔을 느낀 것은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와 ‘가장 무도회’였다. ‘여름의 마지막 날’이나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조금 밋밋한 느낌을 받았다. 이 중 세 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입체기하학’과 ‘나비’와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다. ‘벽장 속 남자와의 대화’는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니 대단한 단편집이다.

 

유쾌하게 읽은 두 편은 비현실적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행동 때문이다. 표면 없는 평면을 이용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그 괴상한 조부의 이야기만큼 흥미롭고, 새로운 실험 연극에서 펼쳐진 섹스와 코커 씨는 본능에 충실함과 재미난 이름으로 즐겁다. 어린 시절 섹스 경험을 다룬 ‘가정처방’은 청소년기에 대한 방황과 무절제와 일탈이 너무 사실적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의 무감각한 모습은 보는 나로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강간과 살인이 이렇게 객관적 시선에서 간단히 묘사되다니 놀랍다. 아픔을 느낀 두 소설은 상실에서 비롯한다. 17살이 될 때까지 엄마에 의해 아이처럼 길러진 남자가 벽장 속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는 부모라는 존재와 사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연극 배우였던 한 여자의 아이 키우기와 그 아이의 시선을 다룬 글에선 집착과 내면을 세계를 위해 연기하며 살아가는 한 여자가 한 아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볼 수 있어 가슴 아팠다.

 

약간 밋밋하다고 한 소설들인 ‘여름의 마지막 날’은 예상한 결말과 의도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왠지 모르게 집중력이 흐트러진 까닭이다. 아마 앞에서 읽은 강한 인상과 충격을 준 소설들에 비해 약간 약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다른 소설들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충격적이고 가슴 아프고 역겹게 이야기를 끌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매혹된다. ‘암스테르담’이나 ‘속죄’에서 이미 경험한 것이지만 이번에도 변함없다. 단편이기에 짧고 강렬하다. 다른 소설들에서 느낀 감정들이 이 소설에서 다시 느껴져 재미있기도 하였지만 약간 거부감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현실에 있는 일이지만 너무 객관적 시선에서 냉정하게 다룬 장면들 때문이다.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그 상황을 그려낼 때는 더욱 그 객관적 시선이 느껴진다. 물론 이런 문장들이 상황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기쁨보다 아픔과 충격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충격적인 것들이 많은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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