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벨의 독백으로 시작한 첫 장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헤밍웨이다. 지독하게 간결한 문장이 이전에 읽은 헤밍웨이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벌어지는 시거의 탈출 장면과 모스의 사냥 장면은 소설이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길고 자세하고 풀어내어 설명하기보다는 간결하고 짧은 문장과 상황으로 때로는 영화처럼 따라가고, 때로는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재현하기 바쁘다.

 

벨, 시거, 모스. 이 세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 소설은 나아간다. 보안관 벨은 사건에 대한 전체 윤곽을 잡고, 실체를 따라가면서 다른 두 인물에게 없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변화에 힘겨워하고 놀라고 자신의 삶에 버거워하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급격한 변화 속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비교하는 장면들은 그만큼 살벌하고 무서운 현실을 반영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매력적인 인물은 시거다. 사람을 죽이는데 도저히 주저함이 없다. 설마라고 하는 순간 총을 뽑아 쏘고, 자신의 부상도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놀라운 직관과 행동은 그를 제거하려는 조직에서 무적이라고 표현한 그대로다. 이 남자가 움직일 때면 또 누가 죽을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체도 실체도 없이 유령처럼 왔다 가는 그를 보면 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연상된다.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모스가 사냥을 나가 마약 거래 현장에서 돈 가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살상의 현장에서 그는 240만 불이라는 거액이 담긴 가방을 가져온다. 그는 예쁘고 어린 아내와 열심히 살고 있는 용접공이다. 그런데 그 하나의 행동으로 또 다른 수많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 그 피바람이 몰아치는 중심에 그가 서 있다. 베트남 참전 경력을 가진 그가 수많은 위험을 넘어 도망 다니는 장면들을 보면 분명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인 것 하나가 부족하다. 그것은 사람을 주저 없이 죽이는 마음이다. 

 

사람을 죽고 죽이고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 긴 설명은 없다. 간결한 문장과 상황 묘사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조한 문체가 짧은 문장과 결합하여 그 상황을 더욱 황량하게 만들고, 거침없는 인물의 등장은 그 상황을 더욱 부채질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벨과 모스가 전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벨은 2차 대전을, 모스는 베트남 전쟁을 겪었다. 이 경험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많은 흔적을 소설 속에 남겨놓았다. 특히 벨의 경우는 그 현장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을 회개하는 장면이 있는데 유일하게 세 남자 중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물임을 잘 나타내준다.

 

원제의 번역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니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로 바꿔야 한다는 말은 어딘가에 보았는데 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비잔티움으로의 향해>에서도 ‘없다’가 아니라 ‘아니다’로 되어 있다. 아마 영화 제목으로 ‘없다’가 알려지면서 제목이 바뀐 듯한데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아쉽다.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본 영화 예고편 때문인지 아니면 문장이나 상황 묘사 덕분인지 영화 이미지를 많이 만났다. 원작을 읽은 상태니 이번에 아카데미 4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진다. 그 피가 튀는 장면들과 상황을 과연 감독은 어떻게 연출하였을까 궁금하다. 간결함과 생략과 상상력에 의한 영상미로 가득 채워지고 불친절한 이 소설이 생각보다 빨리 읽히진 않았지만 나에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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