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펼쳐들고 만난 저자의 글에서 홋카이도 동부의 자연에 대한 40여 년에 걸친 경험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사로 사로잡은 것은 목차와 함께 나온 한 장의 사진이다. 하얀 눈밭에 하얀 동물이 두발을 들고 서 있는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한참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렇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 책은 이야기가 4월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왜 4월부터일까? 한 해의 시작은 1월인데... 생각은 먼저 일본의 새학기가 4월부터 시작한다는 기억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저자가 복수초 꽃이 피면 한 해가 시작한다는 아이누족 이야기로 이런 나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복수초 꽃은 4월에 피어난다. 그리고 첫 이야기는 고로쇠나무인데 저자의 표현의 빌면 동물들의 찻집이다. 우리가 봄이 되면 지방 특산물처럼 마시는 이 물이 여기선 운치 있게 표현된다. 이렇게 사소한 정보와 관찰들을 시작으로 나는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긴 시간을 통해 얻은 자연과의 대화에 빨려 들어갔다.

 

한 해를 통해 홋카이도 동부 자연을 펼쳐 보여주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와 닿은 것은 사진이다. 눈밭을 걸어가는 붉은 여우나 큰 백조가 북쪽으로 떠나는 광경이나 흰 꽃이 핀 것처럼 나무를 뒤덮은 상제나비 떼나 숲 속이나 호수 위나 바다에서 만나는 수많은 동식물의 사진은 가슴속으로 찐한 감동을 준다. 그 광경을 묘사한 글들로 사진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또 사진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읽기를 중단하고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지 생각하면 그에게 고마움과 대단함을 느낀다.

 

사진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면 긴 세월 동안 마주한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잔잔하게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직업이 수의사이기 때문인지 부상당한 동물들을 받아 보살피는 현실의 어려움과 즐거움에서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풀어내는 많은 이야기는 한두 해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긴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물며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들을 관찰하며 살아온 그를 보면 문득 부럽기도 하다. 그 관찰을 통해 자연과 대화하고 조금씩 이해하는 그의 보면 부러움은 더욱 커진다. 단순히 책으로 인한 이해와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약 중독으로 새들이 죽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친환경 흙을 만들거나 숲의 완성을 보지 못하는 나이지만 자연림을 만들려고 하거나 바다사자의 행동으로 피해를 보지만 무의미한 살생을 막자고 하는 이들을 보면 훈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조금 더 좋은 수확을 위해 추수날짜를 늦추다 수확을 못하거나 먹지도 않을 동물과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가진 욕심에 얼굴이 붉어진다.

 

홋카이도 동부지방 한 해 동안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은 40년 이상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들의 모습을 함께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도 다루고 있다. 천연기념물 덕분에 산업으로까지 발전한 모습에선 자연도 하나의 문화상품임을 깨닫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진한 여운과 감동으로 마무리한다. 홋카이도를 긴 시간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산업화된 관광을 통해서가 아닌 생활 속에서 느껴보고 싶다. 간결하고 잘 정리된 문장은 이런 기분을 더욱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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