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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연 ㅣ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악의 삼부작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 ‘악의 영혼’에서 속도감 있고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작가이기에 이번 소설도 기대를 많이 하였다. 역시 예상대로 재미있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계속 이어졌다. 하나의 사건과 단서가 새로운 단서로 이어지며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 전형적인 구성이다. 하나의 사건을 풀고 단서를 가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만나는 사실은 더 강도를 높인다. 점점 높여가는 강도에 비해 나의 감성이 무디어져 있음을 보면 나 자신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한다.
1997년 콜로라도 상공에서 비행기가 폭발한다. 원인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우린 이 사건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예상한다. 그 후 2002년 1월 브루클린에서 한 여자가 벌거벗은 채 거리를 달린다. 잠시 후 여주인공 애너벨에게 전화가 온다. 머리가죽이 벗겨진 실종 여성이 발견되었다고. 이 여자가 가진 단서를 통해 범인을 쫓고 생각보다 쉽게 해결한다. 하지만 이것은 뒤에 올 더 많은 죽음과 실종을 드러내기 위한 전조일 뿐이다.
내부 정보가 신문에 알려진 후 전작의 주인공 브롤린이 실종전문 탐정으로 애너벨을 찾아온다. 신문에 난 한 여자의 실종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두 사람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사건 해결을 향해 나아간다. 약간 전형적인 만남과 진행이지만 가장 매력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전작과 비교해 속도감이나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전작이 브롤린의 시선에서 대부분 처리되었다면 이번엔 두 사람의 비중이 별 차이가 없다. 사건과 사건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범인을 꼭꼭 숨겨놓고 마지막 순간에 드러낸다. 그 중간에 독자를 헤매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작가가 그 단서를 앞에 말해 놓았기에 사실에만 집중한다면 예상보다 쉽게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범인이 누군가 추리하는 재미를 넘어 범인을 쫓거나 범인들이 펼쳐놓은 잔혹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에 부딪히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갇힌 사람들이 느낀 공포감이나 머리가죽이 벗겨진 여자의 탈출 등의 묘사에서 인간 속에 감추어진 악과 공포를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마 누구나 그 사실을 접하고 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깊은 심연 속에서 마주하는 악을 보는 느낌이다.
속도감과 몰입도가 있는 글 속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비행기 사고와 뒤에 이어지는 사건들의 연관성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약한 듯하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사건들의 시발점 중 하나지만 너무 강한 초반의 사고가 예상한 범인의 과거와 전혀 달라 그럴 수도 있다. 프롤로그 마지막에서 암시한 문장들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도 있지만 그 직접적 연관성이 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개인 취향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기적의 궁전이다.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끔찍한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이나 정보는 놀라운 것들이다. 가끔 이와 비슷한 공간을 다른 곳에 만나기도 하지만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생각했는데 작가 후기를 보면 실존하는 듯하다. 정말이라면 더욱 놀랍다. 또 브롤린이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것과 범인이 품어내는 궤변은 가슴 한 곳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설마 범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겠지?